위대한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평전
김윤중 지음 / 더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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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 은 미국의 40대 대통령 이고 1981-1989년 까지 재임 하였다. 강력한 보수 개혁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경제 부흥을 이루어 냈고,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를 표방하여 구소련과의 냉전을 종식 시켰다. 퇴임 후 생존 시에도 역대 미국 대통령 인기도 조사에서 링컨과 케네디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할 만큼 미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따스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머니 넬리는 주일을 거르는 일 없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앙심이 깊었고 낙관적 이었다. 레이건 역시도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였고 12살 될 무렵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세례를 받았다. 레이건은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닥쳐와서 모두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은 포기 하지 않고 다방면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유레카 대학을 졸업했다. 레이건은 인명 구조원으로 근무하기도 하고 스포츠 방송 아나운서로 일하기 도 했다.
 

1964년 10월 27일 레이건의 연설은 TV와 라디오로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다. 기회였다. 레이건은 연설 내용이 공화당의 당론도 아니고 골드워터 후보로부터 받은 원고가 아니라 자신의 소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연설 결과가 나쁘면 자기 혼자 감당하겠다는 뜻이었다. 레이건은 무엇보다도 먼저 미국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 재정문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인이 지나치게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 정부가 뉴딜 정책이래 실시하고 있는 정부 주도형 농업정책 때문에 자유농민의 경작지가 줄면서 자유로운 영농이 위축된다고 이야기 했다. 이것은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고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라 비난했다.


레이건은 69세의 나이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 1981년 1월 20일의 일이었다. 레이건의 등장은 무엇보다 뉴딜 이후 미국의 전통적 가치 즉 보수주의 의 부활을 의미했다. 레이건은 취임사 에서 먼저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했다. 경기가 침체되고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의 원인으로 과세의 부담과 정부의 방만한 지출에 따른 적자 예산을 지목했다. 레이건은 거대 정부가 적자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작은 정부를 만들고자 했다.  

레이건은 극심한 경기 침체를 우선 과제로 삼았다. 핵심은 경제적 번영이었다. 이를 위해 레이건은 정부 지출을 삭감하고, 감세정책을 실시하고, 규제완화, 긴축통화정책 실시. 이른바 레이거 노믹스의 시작이었다. 이로 인해 민간투자를 활발히 하여 미국경제를 활성화 시켰지만,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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