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민국 트렌드 - 1인 체제가 불러온 소비 축소
최인수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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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9 대한민국 트렌드>>를 읽었다. 늘 전망이라는 게 완벽할 순 없다. 그렇다 해도 미리 2019년을 엿볼 수 있는 느낌이었다. 책에서는 밝힌다. 트렌드 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타나게 될 것이라 주장하는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모든 주장에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실하다면 강력한 주장이 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전망하는 또 다른 이유는 2019년의 소비자들의 심리와 마음을 정확히 읽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벌써 2019년을 논하는 것을 보니 이제 2018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뭔가 좀 아쉽다. 
 

​앱(App) 조사 전문 기관인 와이즈앱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였다. 지난 2018년 8월 20대~50대 이상이 사용하는 모든 앱 중에서 유튜브앱은 1인당 1,088분을 사용했고, 월 사용자수는 3,093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10대들의 경우 2위사용 앱인 '카카오톡'보다 무려 4배나 더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5월을 기준으로 사용 시간 점유율을 보면, 유튜브의 점유을은 무려 85%를 넘고 있고, 유사한 서비스인 아프리카TV와 네이버TV 등 다른 서비스는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유튜브 전성시대다. 유튜브가 대부분의 '검색 행위'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분야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유심히 읽은 부분이다. 저자의 말대로 유튜브의 전성시대다. 수많은 콘텐츠가 녹아있고, 흔한 말로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보물 창고와 같은 앱이다. 게다가 활자가 아닌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라 더욱 강력하다. 그래서인지 유튜브는 광고가 빼곡하다. 영상 하나를 시청하려 해도 반강제적으로 광고에 노출된다. 더 놀라운 것은 방송사에서 지상파에 투자하는 광고비를 넘어 유튜브 광고 시장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의 방향이 지상파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새로움'에 대해 반응하고, 보상을 제공한다.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뇌에 '놀라움'을 추구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뇌과학자들은 두뇌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에 관심을 가졌고, 이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은 새로운 현상이나 사실을 인식할 때 생성되며, 보상 체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뇌는 새로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끌리게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배후에 도파민이라는 뇌 신경전달물질이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거대한 자본주의와 인간의 본능이 적절하게 만나 트렌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 (...) 그래서 과거부터 오랜기간 인간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기 위해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여행을 즐겨왔다. 하지만 '돈과 시간'이라는 자원의 부족과 만성적인 피로감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보다는 '휴식'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집에서 휴식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찾는다. (...) 새로운 자극을 찾는 뇌는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거양득의 공간. 이것이 2018년 현재의 유튜브다.

좀 너무 비약적인 설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인간이 편함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여행지에서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유튜브가 대신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여행을 준비하며, 설레는 기분을 유튜브가 선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통일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먹고사는 문제'였다. 이 '먹고사니즘'의 문제에서 볼 때 통일은 '큰 경제적 부담'을 수반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일이라는 주제는 직접적으로 나의 문제 혹은 나의 이해관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현실감 없는 주제라고 인식하고 있는것이다. 

나 자신을 봐도 주위를 둘러봐도 정말 그런 것 같다. 당장 내 피부에 와닿지 않은 이슈들은 웬만하면 잘 관심이 가지 않는다. 이를 개인 이기주의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통일이나 남북문제와 같이 중요한 문제지만 개인이 어떻게 하기엔 어려운 사안은 개인의 체감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저 지혜로운 정부가 잘 해결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라고 우리가 세금을 내고 정부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모두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국가와 국민이 '소통'을 하는 공간 그 자체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대부분 매우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부와 국민이 상호 간의 생각과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순기능적인 역할'에 좀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응답자 스스로 역시 향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을 이용하겠다는 의향을 많이 밝히고 있어 앞으로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국가와 소통하는 창구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그야말로 '현대판 신문고'다. 정치 시스템이 대의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국민들 역시 저마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게시판은 다이렉트로 청와대에 전달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현재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나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입지를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외에 직접적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촛불 혁명만 보더라도 더 이상 국민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불의를 보면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또다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특히 법을 다스리고 판결하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질 만큼 사법부의 위상 추락이 심상치가 않다. 최근에는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법부의 신뢰도 하락으로 삼권분립의 위기까지 맞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본래 사법부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며,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지만 오늘날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법과 사법부는 이런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듯하다. 

최근에 국민 정서와 가장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사법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는 지난 정권의 사법 적폐가 팩트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만의 철옹성에 갇혀 은밀하게 요새를 지키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저자의 지적처럼 사법부는 권력을 견제하는 기관이다. 그 기관이 오히려 권력과 맞붙어 권력의 의지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으니 창피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더 깨우치게 된 데이는 아무래도 2018년 4월에 빚어졌던 '중국발 쓰레기 대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중국의 폐자재 수입 중단 결정으로 비롯된 '쓰레기 대란' 이 있기 전까지,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재활용 쓰레기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고, 그저 우리나라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중국은 폐자재를 가져다가 무얼 했던 것일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의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 정의는 앞으로도 학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갈 것이다. 그래서 이시기에 알아야 하는 것은 대중 소비자들의 '미래의 이미지'다. 미래는 어차피 대중이 상상하고, 희망하는 방향으로 진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를 둘러싼 '일자리'문제는, 상대적으로 일자리의 절대 수가 여유가 있는 일본의 경우는 제외하고, 한국과 중국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것에 관한 정부 정책은 지속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의 속도가 그렇게 빠른 것 같지는 않지만, 이미 우리 삶 속에는 4차 산업혁명의 진행과정이 곳곳에 묻어나있다. 사물인터넷이 그렇고, 무인계산기가 그렇다. 외부에서 집의 보일러와 에어컨을 작동하고, 판매점의 계산은 로봇이 대신한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방법이겠지. 그런데 얼마 전 읽은 기사에 이제 로봇은 소설까지 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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