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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전후사의 재인식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으로 옅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김도연 작가의 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막상 만난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은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몽환적인 다방 커피의 향내가 풍겼다.
다방은 현실세계의 익숙함을, 커피는 현실의 버거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환상으로 내게 다가오는 듯 했고 나는 이내 그 달콤한 맛의 환상에 눅눅해졌다.
<떡>의 ‘병점댁’은 공사장 인부들을 상대로 인절미와 커피, 그리고 몸을 팔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남쪽나라에서 시집을 온 그녀는 병으로 남편마저 일찍 잃었다.
그녀는 공사장에서 몸을 팔면서 죽은 남편의 환영과 만나게 된다.
아직도 처음 보았을 때의 순수했던 남편의 눈빛을 기억하며, 그 눈빛이 퇴색되던 세월의 흔적들도 간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짓밟고만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이내 괜찮다고 다독이는 과정 속에서 ‘병점댁’은 처음 순수했던 남편의 눈빛을 한 사내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이, 순수하려던 나의 환상을 거두었다. 이 소설집의 묘미인 듯 했다.
그리고 떡은 참 맛있었다.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은 정말 좋은 제목이다. 이 단편 소설은 이 제목과 너무나도 일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이엠에프, 가난을 문제로 헤어졌던 커플이 8년 만에 다시 만나(물론 각자의 가정을 가졌다) 도둑 사랑을 나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가난이 문제되지는 않지만 그들의 만남에 더 이상의 기대란 것이 없다.
더 이상 그들의 만남에는 희망도 환상도 없다는 것이, 완벽하게 재인식되는 소설이었다.
아름답지도 않을 것을 가지고 아름답다 꾸며놓은 불편한 환상만 마주하다가, 맞는 것을 ‘맞다’는 말 빼놓고 다 표현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신이 났다.
아, 정말 맛있었다.
<북대>의 ‘밀크셰이크’ 언니, <사람 살려!>의 성기 도령, <저 언덕으로 건너가네> 양봉주 씨, 꼭 한 번 만납시다!
그나저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환상 속으로 두려움이 스며드는 것은 왜일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