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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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블로그 연재를 통해서 <살인 당나귀>라는 작품을 처음 접했었다.

그 후 <은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 된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

자신을 미쳤다고 칭하며 한 달 반 만에 썼다는 이 소설에 빠져, 한동안 여고생만 보아도, 눈빛에 힘이 실린 노인만 보아도, 쌍꺼풀이 진한 삼십대 남자만 보아도, 머릿속이 물렁해 지며 이면의 사생활이 궁금해지곤 했었다. 마음대로 그들의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마치 은교 같을까, 마치 이적요 같을까, 마치 서지우 같을까, 마치 그들 같을까 하며.


<은교>를 끝까지 다 읽어갈 때 까지, 내 안의 은교는 이적요의 은교와 마찬가지고 여리고 투명하며 한 없이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녀와 서지우의 관계하는 장면을 2층 창문을 통해 훔쳐보면서 까지도, 관능적이고 여자인 은교의 그 모습을 보면서 까지도 그녀의 투명함을 믿으려하는 늙은 이적요의 모습에 적잖은 아픔을 느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알게 되었다.

은교는 그저 향기 없는 꽃에 불과했으며, 별과 달이 존재하지 않은 밤하늘이었음을.

꺾어 소유하지 못 했기에 향기가 없는지 알 수 없었으며, 감힌 올려다 볼 수 없었기에 별과 달이 없는 그저 적막뿐인 밤하늘이었다는 것을, 이적요는 알지 못했다. 불행히도.


서지우와 은교의 은밀한 관계를 목격하게 된 이적요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의 살인 당나귀를 이용해 서지우를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아버린 서지우 또한 그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파멸이다.


은교를 사이에 둔 스승과 제자의 갈등은 서로를 파멸로 이끌며 극단의 비극을 부른다.

그들이 파멸로 치닫는 사이, 은교는 오히려 보호받는다. 경쟁적인 스승과 제자의 달콤한 애정을 번갈아 받아가며, 풍요롭지 못한 정신을 살찌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이 스승과 제자를 파멸로 이끌게 한 일등공신 은교의 원래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의 특별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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