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선명하다’는 것은
‘해 뜨는 동쪽에서 달 지는 서쪽까지의 넓은 지역을 밝혀주어
사람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고
‘땅이 동쪽에 있어 해를 가장 먼저 밝힌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조선이라한다.
-김정호, 대동여지전도 서문 (p. 175)
고산자(古山子).
소설간 박범신, 마치 그는 자신의 일기를 쓰듯, 천천히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문장은 힘찬 기운이 서려있었고, 김정호의 생애가 녹아 담겨있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간 고산자 김정호의 이야기.
그의 아비는 산중에 길을 잃었고, 그로인해 김정호는 아비를 잃었다.
지도 한 장. 정확하지 않은 지도 한 장이 24人의 가련한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그는 어디든 가고 싶었다.
바람은 언제나 시도 때도 없이 불었다.
처음에 그는 길을 따라다녔고, 다음엔 물을 따라다녔고, 일고여덟 살이 넘어서는 주로 산을 따라다녔다. 따라갈 수 있다면 새가 되어 바람조차 따라가고 싶었다.
목숨이 와서 목숨이 가는 길도 따로 있을까. (p. 63)
그의 가슴 속의 한, 그 한을 한평생 짊어지고 그는 인고의 한 획을 긋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이렇게 몰두할 수 있을까.
오로지 그 것만을 위해 내 인생을 내어줄 수 있을까하는 온갖 물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그의 사랑, 혜련 스님.
그의 인생에는 지도만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했고, 그의 사랑은 숭고했으며, 그리고 가슴 아팠다.
지도꾼과 비구니의 사랑, 생각만 해도 아련하지 않은가.
박범신, 그는 옛 산 사나이 김정호를 다시 살려냈다.
김정호는 비로소 탁배기 한 잔을 기울이며 가슴속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그 이야기에, 눈물지어지고 미소 지어 진다.
송림 사이로 또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 어디로 흐르고 어디에서 소명하는 것일까.
목숨 가진 것들의 지도를 그리는 것은 바람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을 쫓아가본다. 어서 떠나야지. (p. 87)
얄프리하게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그 속에 아스라이 들려오는 고산자 김정호의 슬픈 휘파람.
여기, 고산자 김정호의 애달픈 인생을 채워 넣은 지도 한 장이 있다.
어서 펼쳐 길을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