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에는
최종 목적지가
없어도 괜찮았다.

모든
지금의 순간들
출발지이자 목적지였다.

오직 내 안의 레버
즐겁게 당겨낼 수 있음으로
자신만의 나침반 의지하여
나아가면 되는 여행이었다.

오늘 하루
또 어떤 레버를 당겨

스스로에게
감동과 감사 선물할지
설레임 가득한 여행의 시작은

여기에서
행복하기
에서부터.

처음 8평짜리 작업실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던 순간

매일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1시간씩 걸어 작업실로 출퇴근하던 날들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던 마치
소꿉놀이를 하듯 동분서주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쉼 없이 달려오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나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그래,
어떤 산을 오를지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5년 전 바닷가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던 때처럼 나는 다시
나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 길고 긴 대화 끝에 나는 내가
원하는 또 다른 목표를 찾을 수 있었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새로운 도전은 나의 두 번째 채널
‘마세슾‘이 되었다.

산을 오르다 보면
고개를 넘게 된다.
나는 그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또 다른 길이 보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잠시 앉아
내가 어떤 산을 오르고 싶은지
다시 한번 충분히 고민해도 좋다.

그 사이 구름이 걷히고
내가 못 본 또 다른 산이
보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퇴사 후 떠난 첫 여행에서
나는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할 것

그리고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그 과정 자체를
여유롭게 즐길 것.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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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보되
거기에 갇히는 게
아니라

안될 걱정보단
잘될 고민을 하기.

가장 작고 소소한 실천들
확실한 습관으로 만들어
무한 반복하기.

그러면 오늘은
가장 오래된 미래
가장 원하던 그 날
될 수 있다.

하느님의 처신이 옳았다.
옛 속담에서도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우리에게 놀이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앞의 편지에서도 말했듯이, 학습은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받아 조용히 이해되는 경험이다.

우리에게는 지난 주나 지난 달에 무엇이 제대로 진행되었고 무엇을 다른 식으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돌이켜보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반추가 없다면 우리는 변하지도 더 나아지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가 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결코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너희에게는 휴식과 반추를 위한 규칙적인 습관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제 그런 습관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너희를 대신해, 너희가 지켜야 할 습관을 만들어줄 수 없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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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여윈 암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굶지 않을 만큼 살아가고 있었죠. 그것말고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집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묘목들도 키웠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훨씬 의미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제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영적 교사 페마 초드론은 말한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에만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행성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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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과 수비
집중과 분산
채움과 비움

세상만사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언제나.

제욱 씨의 사례로 우린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100억 원은 거금이지만
일정한 소득을 손실 없이 만들려고
하면 생각보다 적은 돈이다.

반대로 말하면 나에게 276만 원의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면 100억 원을 가진 자산가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기적이고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보통 그 액수의 100배 규모 자산의 힘과 같다.

그만큼 정기적인 자산은
높은 가치를 가진 고품질의 자산이다.

둘째, 돈은 버는 것만큼 지키기도 힘들다.
돈을 잃지 않고 지켜내는 일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배워야 할 일이다.

버는 것은 기회와 운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지키는 건 공부와 경험과 지식이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가치다.

셋째, 정말 100억 원을 가졌어도
276만 원 급여 생활자의 생활 태도를
넘어서는 순간 재산이 하향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검소하고
단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신은 100억 원을 벌 사람이니
미리 이 지혜를 받아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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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과 1936년과 1937년
사이에 벌어졌던 그 외의 사건들은
무게 추를 한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 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됐다.

1936년부터 내가 써 왔던 모든
심각한 글들은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한 것들이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살면서 그런 주제를
다루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런저런 식으로
모든 작가들은 그런 주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 방식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더 많이 의식할수록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지난 십 년 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었다.

내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 즉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쓸 때 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 말테야." 라고 말하지 않는다.

폭로하고 싶은 거짓과 관심을 둬야 할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책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최우선 관심사는
독자들이 내 생각을 듣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적 경험이 없다면
책을 쓰는 일은 물론이고 장문의
잡지 기사를 쓰는 작업조차 불가능하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을 쓸 때조차
전업 정치인이 보면 관련성이
부족한 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형성한 세계관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 몸과 정신이 온전한 한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며
지구를 사랑할 테고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쪼가리들에서
기쁨을 느낄 것이다.

나의 이런 면을 억누르려는 수고는
부질없다. 이는 내 안에 깊이 배어 있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공공적이며 비 개인적 행위를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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