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물어주마 - 왜가 사라진 오늘, 왜를 캐묻다
정봉주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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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최강욱 이재화 하어영 지음

끝까지 물어주마


제목부터 다부진 이 책은 2014년부터 시작한 정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다룬 이슈들 중 10가지를 추려내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 선정한 2014년과 2015년을 대표할 키워드 10가지는 바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미친 전세', '가계부채', '세월호', '쌍용자동차', '민주주의 종언(정당해산)', '김영란 법', '국정원 해킹', '대일외교', '그리스 경제위기' 등이다. 단어들이 나열된 모습을 보고 있느라 면 숨이 턱 막히고 가슴한켠이 답답해지는데, 그 이유는 이 키워드들이 상징하는 문제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인데다 그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 속 서민과 약자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국민들의 목소리는 상위 1%의 탐욕에 묻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 시간을 끌어온 문제들인 만큼 진부해지고 잊혀 가는 위의 문제들에 대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라고 물어(question)보겠다는 의지와 지치지 않고 물고(bite)늘어지겠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책 제목이 퍽 든든하다.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에서 2015년 이슈를 추려냈는데 위에 언급된 사건들 말고도 간통죄 폐지’, ‘민중 총궐기 집회논란’, ‘김영삼 대통령 서거’, ‘롯데경영권 분쟁’, ‘네팔 지진’, ‘성완종 리스트 파문’, ‘메르스 사태’, ‘임금피크제’, ‘사법시험 존치 논란’,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한중FTA’, ‘IS공포 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리퍼트 주한 대사 피습’, ‘안철수의원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예비군 훈련장 묻지마 총기난사’, ‘이란 핵협상 타결’, ‘시리아 난민’, ‘뉴호라이즌스호 명왕성 탐사등의 사건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게 다 2015년 한해 일어난 일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옛일 같이 멀게 느껴져 새삼스러우면서도,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대중의 관심과 분노가 너무 쉽게 식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움 마음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어릴 적 냄비근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일에 대해 흥분했다가 곧장 잊어버리는 성질의 사람을 한순간 팔팔 끓어오르다 곧 장 식어버리는 냄비에 빗대어 비판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냄비 같은 사람보다 뚝배기 같은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셨고, 이는 곧 어떤 일에 대해 쉽게 흥분하지 말고 또 쉽게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의 은유였다. 하지만 <끝까지 물어주마>를 읽고, 포털사이트에서 올해의 이슈 투표를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냄비근성과, 우리 국민들의 냄비근성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아 위의 이슈들이 떠오를 때 마다 놓치지 않고 관심 있게 지켜보며 주먹을 쥐며 욕하기도 하고, 잊지 않으려 기록 하고, 관련 자료들을 더 찾아보고, 성금을 보내고, 울기도 하고 박수치며 웃기도 했었지만 나또한 곧장 피로감을 느끼며 눈앞의 중요한 일들로 시선을 돌리곤 했던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정치가 개인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기가 어렵다. 다만 먼 이야기고 윗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며 눈앞의 중요한 일에 매달려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아등바등하며 살기도 숨 가쁘다. 하지만 이럴수록 우리는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 구성원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며 세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곧 내 일이 아닌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것을 알게 되면 눈감고 지나칠 수가 없다. 개인의 작은 관심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곧 나비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왜가 사라진 오늘 왜를 캐묻기 위해, 지난 일이라 버려뒀던 이슈들에 대해 상기시키고 기억하기 위해 정봉주의 <끝까지 물어주마>는 책으로서 의의를 지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이를 갈고 주먹쥐며 걱정과 고민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생각을 공유하고 시대를 기억하는 계기이자 고리가 될 것이다.

8090으로 대표되는 지금 나와 내 친구들의 세대는 기성세대들의 6-70년대 눈물겨운 희생으로 당장 먹고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겪는 문제는 생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고용 불안정성, 기회의 불평등, 반쪽짜리 민주주의, 사회적 부패와 부조리 등의 사회적 난관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부딪히며 취업난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내가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지금, 그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나는 책임을 지는 기성세대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에 대해 당당히 대답할 수 있도록 잊혀져 가는 문제들에 대해 ?’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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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르크스 + 프로이트 - 전2권
코린 마이에르 지음, 안 시몽 그림, 권지현 옮김 / 거북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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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린 마이에르 / 그림 안 시몽

마르크스

마르크스를 빼 놓고는 20세기 사회, 정치, 경제는 물론 역사를 함부로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사상에 긍정적이든 비판적이든 누구나 꼭 그에 대해 읽고 알아야야 하는것은 물론이지만, 평전 한 두권만으로는 결코 그의 삶이나 사상 등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화로 그리다니, 반신반의 하며 받아본 책은 겨우 손가락 한마디의 반도 안되는 두께였다. 여기에 어떻게 얼마나 마르크스의 삶을 녹일 수 있었을까 우려하며 책 읽기를 시작, 곧 그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마르크스의 일생이나 업적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가 있는 상태에서 읽으면 풍자와 위트를 느낄 수 있지만, 이 책으로 마르크스를 처음 접하게 된다면 갈피를 잡지 못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를 위한 마르크스'라던가 '마르크스와 자본론', '마르크스의 일생' 등 키워드를 세밀화 하던지 특정 계층을 공략하던지 조금 더 신중하고 탄탄하게 이야기를 서술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드는 책이다. 많은걸 담으려 한 욕심이 오히려 난잡함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누군가에게 권하기도, 또 책장 한켠에 이를 위한 자리를 두기도 애매한 책이지만 그래도 그 중 가장 와 닿았던 마르크스의 한마디 말을 아래에 싣는다.

"실업자들은 자본주의의 예비군이다. 점점 늘어나는 실업자. 그것이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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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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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지음

공허한 십자가

두터운 마니아층의 지속적인 확보로, 리틀 하루키와도 같은 히가시노게이고의 신작 공허한 십자가를 ebook으로 먼저 만나봤다. ‘공허한 십자가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십자가, 곧 속죄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소설 속 이야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얼핏 사형제의 존폐나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 본다면 속죄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나카하라는 20년 전 강도로부터 딸 마나미를 잃고 충격으로 힘들어하다 아내와 부부의 연을 끊고 각자의 길을 가게된다. 더 이상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된 나카하라는 5년 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반려동물 장례사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슬픔을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마음도 정화된듯한 생각이 들어 이 일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갑작스런 아내의 비보를 듣고 그녀의 장례식에 조문차 다니러 온 그는 그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의 장례식장과 똑같거든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담담하게 하는 거지요. 더구나 사람의 장례식과 달리 원한이나 이해관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상주들은 모두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하지요. 그것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모두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그에게 순수한 슬픔을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향한 정화의 도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그는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최근까지 아내 사요코가 도벽증 환자들에 대해 취재하고 있었다는 것과 아내가 쓴 원고 사형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의 내용을 통해 그간 수많은 범죄자들을 속죄시키기 위해 싸워온 아내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아내 사요코를 죽인 범인은 곧바로 자백했고, 그는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어떻게든 범인이라는 증오할만한 구체적인 대상이 밝혀지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범인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질 날을 기다린다는 목표가 생기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생명을 빼앗아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그들도 잘 알지만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통과점 마저 빼앗길 순 없기에 그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 갱생의 여지가 있다, 범행에 계획성이 없다, 동정할만한 점이 있다, 등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이 떠다니는 재판장에서 피고인이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카하라의 딸과 아내는 모두 살해당했지만 두 범인은 모두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해 감형받아고 그들에게 내려진 사형이 수감형으로 줄었다. 범죄사실에 대한 진술이 형을 결정했고 살인자는 공허한 십자가에 묶였다.

처벌로서 사형제를 두고본다면 인간의 ​기본권인 생명권의 침해여부 대한 논쟁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사형제는 공권력에 대한 기본권의 침해이며 적법한 절차에 의해 내려진 선고라 해도 오판으로 인하여 생명이 억울하게 희생된다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로, 우리나라의 사형제에는 불필요한 규정이 많아 이로 인해 정치적이유로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다. 사형제를 존속시키려 한다면 최소한의 규정만으로 규범력을 확보하는 것과 사형집행 방법에 있어서 심각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사형 선고를 통해 '죽음으로 속죄'가 가능할까 ?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징역형으로 교도소에 있다 해도 속죄하고 반성하는 참사람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도 높은 재범률이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어떤 결말을 내려야 할 것인지 도대체 대답이 보이지 않아 벽에 부딪친다.

이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는 어떤 형식으로서의 처벌도 '처벌'일 뿐이지 진정한 '속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며 끊임없는 물음표를 그리고 있다.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는 인간에게 부여된 객관적 질서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어긴 자들에 대해 어떻게 '속죄'하게 하느냐, 무엇이 진정한 '속죄'이며 객관적으로 그것을 '속죄'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끊임 없는 물음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감히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하도록 또 우두커니 하게 하는,

쉽게 읽히지만 쉽게 접어둘 수는 없는 히가시노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

결코 잊어서도 덮어두어서도 안될 문제에 대해 가볍게 환기시켜 무거운 여운을 남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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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와 딸
호로이와 히데아키 지음, 박미정 옮김 / 유아이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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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이와 히데아키지음 박미정 옮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와 딸

여자의 심리 문제는 어머니와의 잘못된 관계에서 시작된다.’

표지에 적힌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강하게 와 닿으면서 책을 통해 내 심리적 건강상태를 진단해 보고 문제가 있다면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곧바로 그것을 풀어 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손에 쥐게 된 책이다. 보통 엄마와 아들(母子之間)이나 아빠와 딸(父女之間)의 관계를 통한 심리 분석을 많이 봐 왔던 터라 엄마와 딸(母女之間)을 소재로 한 책을 보자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놨을지 신선한 호기심도 적잖이 발동했다.

엄마처럼은 안살거야헌신적이다 못해 답답한 어머니의 모습,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어머니 모습 등 반항기에 속으로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신 차려보니 자신도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 엄마와 딸은 여자로서 삶과 육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녀사이의 심리적 대물림은 모자관계, 혹은 부자관계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책에 드러난 사례가 극단적으로 악화 돼있거나 심각해 나의 경우와 맞대어 보며 공감할 순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이 더욱 두터워졌다. 이 책은 현명한 엄마가 되기 위한 방법과 지혜로운 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알려주고 있다. 서로가 자신의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 상대방을 바라보고, 서로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한다면 서로에게 의존하되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건강한 모녀가 될 수 있다고

모든 갈등이 서로에 대한 사랑의 왜곡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이 곧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자신을 믿는 것이 건강하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길이 아닐까.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엄마는 딸을, 딸은 엄마를 믿게 된다. 딸은 엄마를 위해 그 열쇠를 쥐고 태어나는 존재다. 모든 엄마와 딸들이 건강한 심리를 대물릴 수 있기를 바라며 일독을 권한다.

진정한 엄마란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파트너이자 지속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경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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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로 읽는 르네상스의 거장들 일러스트로 읽는 시리즈
스기마타 미호코 지음, 강신이 옮김 / 어젠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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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하면 예술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누구나 들어는 봤을 르네상스시대의 산물이라면 역사·철학·문학·예술을 아울러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듯한 은근한 압박감도 있기 마련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험문제 하나를 더 맞히기 위해 선생님께서 내 주신 요약본을 달달 외웠지만, 이제는 르네상스의 거장들을 다시 기억해내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예술 작품 속에 숨 쉬는 작가의 영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은 맘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름도, 순서도, 수많은 작품과 작가를 연결하는 것도 모두 어렵게 다가오는 것을 일러스트로 읽을 수 있다니 !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무척이나 편했다. 하지만 책과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연 화가인 지오토를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까지 그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담은 책 치고는 너무 얇았기 때문이다. ‘뭐 하나 제대로 담겨 있을까싶은 의구심으로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미술사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다수의 잘못된 연대표기, 작품과 작자의 잘못된 연결, 근거 없는 일화 등을 지적받으며 신뢰할 수 없는 책으로 각인되기도 한 미술가 열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대로 삼게 된 것은 당시의 예술가들의 인격과 생애를 이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 없을뿐더러 저자 바사리의 미술비평의 가치를 높게 산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장황한 이야기에는 작가의 삶과 가치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우리는 길게 쓰여 진 이야기를 통해 글쓴이에 대해 알 수 있고 그와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술작품에는 읽을 수 있는 글(text)가 없다. 우리는 작가의 손길이 닿은 붓터치​를 통해 작가에 대해 추측하고 작품을 해석 해야 한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시대와 작가의 삶을 먼저 이해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붓끝에 담긴 예술가의 영혼에 훨씬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일러스트로 읽는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가독성 높은 일러스트로 인물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각 예술가의 시대상황에 따른 작품의 변화, 영향을 받고 후대에 영향을 준 '미술사'까지 함께 소개되어 있어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쉽게 읽히는 만큼 가까이 손닿는 곳에 두고 자주 열어보며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을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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