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전 - 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박애진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칼, 바람, 사람, 다시 바람..
책의 각 장의 소제목이다..
이처럼 소설은 지우의 존재의 변화를 쫓으며 인간 혹은 존재 그 자체를 담고있다..
 
칼로 살았던 명이 어떻게 지우가 되고 그렇게 사람으로 살다가 어떻게 바람이 되는지..
소설은 그 과정을 차례대로 보여주지 않고 연아라는 인물을 매개로 오랜 고서를 뒤적거리듯이 들춰낸다..

현재의 지우가 있다면 과거의 지우는 연아다..
타인에게 존재가 덧씌워진 건 지우나 연아나 마찬가지다..
세자를 호위하는 춘검장으로서, 쓰러진 가문을 다시 일으킬 기둥으로서 그 삶의 가치가 부여된 연아는 그 무게를 힘겹게 견딘다..
하지만 지우를 만나고 바람을 보고 느끼면서 자신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는다..
만물은 먼지에서 태어나고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남을 위해 존재했던 연아는 그렇게 지우처럼 나를 위해 존재한다..   

지우가 칼을 놓고 바람이 된 것처럼 연아 역시 그녀를 짓누르는 짐을 벗고 바람이 된다..

삶과 존재라는 자뭇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무천도사>와 <전우치>를 연상케하는 도술의 세계를 천연덕스럽게 펼쳐보이며 당연하다는 듯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가 꽤 재밌다..
또한 민간 설화와 전설 같은 익숙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포개어 놓는 입담도 좋다.. 
그 태연스럽고 담백한 화술이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변술과 축지법, 한 맺힌 요귀 등의 소재들을 거리낌 없이 읽는 이에게 전달한다..

또한 팩션소설의 맛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하는 왕실의 권력과 암투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반정과 왕위찬탈, 세자 책봉과 권력 싸움 등이 전면에 등장하진 않지만 여기저기 그 흔적을 남겨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지우전>은 뛰어난 한국형 환상소설의 모습을 갖추고 그 안을 매력적인 인물들과 배경, 소재가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삶과 존재의 무의미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내포하는 도교적 성찰까지 좇는다..
도술의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오랜만에 일깨워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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