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고마워 - 옆에 있어 행복한 부부이야기
고혜정 지음 / 공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아마도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상투적인 제목의 책은 읽을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작가님 죄송합니다~꾸벅~ㅎㅎ)

아빠, 엄마, 아내 등 가족이 제목에 등장하면 실과 바늘처럼 당연히 따라오는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서로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구구절절 전달하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들은 참 많이  보기도 했고, 책을 읽으면서 거울을 보듯 내 모습을 보고 또 그걸 보면서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싫기도 해서다.

이 책 [여보 고마워]는 가족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다른 책들과 비슷한 흐름이면서도 또 뭔가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작가 개인의 가정사를 담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애써 꾸미지 않고,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친구네 집이나 옆집 이야기를 듣는 듯 공감이 가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누구네 집은 어쩌고...누구누구 남편이나 아내가 어쨌다는 둥...지인들과 모여 수다떠는 느낌 혹은 라디오 청취자가 보낸 사연을 DJ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내 이야기인 듯 옆집 이야기듯 공감하고, 몰입하면서 금세 한권을 읽어냈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밤낮없이 바쁘게 일한다. 돈을 벌기 위해 나가는 직장에서는 늘 스트레스를 받고, 일의 연장인 회식 자리에 빠질 수 없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으니 친구며 거래처 사람, 직원들과의 관계 유지를 한 시간들도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자란 시간을 어디서 빌려올 수도 없고, 미래의 시간을 가불해서 쓸 수도 없으니 가족과 가정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을 소모해버린다. 가정과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는 아빠는 사실은 가정과 가족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건데, 그것을 세상의 남편들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그저 자신은 돈만 열심히 벌면, 살림은 아내가 하고 애들은 저절로 크는 건 줄 안다.

하지만 엄마들은 다 안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시간을 같이한 사람을, 자신들과 같이 공감하고 추억을 만든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사랑과 애정 표현도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늘 자신을 챙겨주고, 어려서부터 같이 뒹굴고 뽀뽀하고 끌어안던 엄마에게는 아이들도 뽀뽀하고 껴안는 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늘 대화하던 엄마와는 얘기가 통하고 즐겁다.

그런데 만날 일 때문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고, 가끔 놀이동산이나 데리고 가주고,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때 선물이나 큼지막한 것 하나씩 사 주면서 아빠라고 얼굴 도장을 찍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작심하고 관심을 보이면...(생략)...어쩌면 남자들은 그렇게 일에 치여, 정신없이만 하다가 가족에게는 소외를, 사회에서는 배신을 당하는 불쌍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p.67~68)

 

==> "엄마만 안아줄거야. 엄마한테만 뽀뽀해줄거야."

여섯살 딸아이가 이런 말로 아빠를 약올릴 때가 많다. 실제로 엄마와는

수십번도 더하는 뽀뽀를 아빠한테는 인색하게 굴 때가 많다.

딸아이와 참 재미있게 잘 놀아주는 남편인데..그럴때 마다 서운하지

않은지 눈치가 보이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종일 붙어있고, 종일 수다떨기 바쁜 엄마와 비교하면

아빠는 퇴근 후 잠깐 보는 것 뿐이고, 어쩌다 주말에 나들이를 함께 하는 정도니, 그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의 정도가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이에게 애정표현과 사랑을 요구하기 보다 아빠 스스로 좀더 아이에게 다가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쉬는날 소파 위에 누워

TV 리모컨만 만지작 거리다 낮잠에 빠지는 대신...^^;;;

지금은 놀자고 달라붙는 아이가 귀챦기도 하겠지만, 친구랑 놀아야 된다고

아빠 엄마를 밀어낼 날이 사실 얼마 남지 않았으리란 생각도 든다. ㅠㅠ

 

 

 

"진짜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 내 나이 마흔이야. 이제 입 안 짧아. 그리고 이제 혼자 몸 아니고 남편이랑 애들 때문에 이거저거 해서 잘 챙겨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 됐어. 내가 알아서 해. 엄마는 몸도 편치 않으면서. 아이, 몰라. 내 일 걱정하지 말고 엄마 일이나 걱정해. 만날 허리 아프다면서 김치는 무슨 김치."

"엄마, 나한테 죄졌어? 왜 내 눈치만 보고 할 말도 다 못해?"

(p.88~89)

 

 

==> 읽자마자 슬쩍 뒤를 돌아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혹시 누가 내 모습 훔쳐보고 있는건 아니겠지? 내 얼굴이 빨개진거 보이는건 아니겠지? 이건 내 얘기다. 그냥 딱 내얘기다.

시어머님께는 나름 애교도 부리고, 곰살맞게 이런저런 얘기도 잘해드리는데, 친정 엄마에게는 늘 투덜투덜...불평불만...더 편해서...더 가까워서...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다 알아주실 것 같아서 그렇게 나는 늘 심통맞은 투덜이 또는 무뚝뚝 대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엄마는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 입맛, 이맘때면 뭘 잘 먹고, 뭘 먹고 싶어 할

거라는 것까지. 그런 엄마 때문에 속상하다.

나는 엄마에게 해주는 게 없는데 엄마는 어쩌면 한결 같이 날 위해줄까? 반찬들을 통에 담아 정리를 하면서 자꾸자꾸 눈물이 났다. 속상해서, 미안해서 자꾸 눈물이 넘쳤다. 그러면서 또 쓸데없이 '엄마 죽으면 난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엄마에게 잘해 주지 못한 시간들이 후회가 될 것이 뻔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만날 '잘해야지, 잘해야지.' 는 생각뿐이고 마음뿐이다.

막상 엄마와 통화하면 애교와 곰살궂은 말보다는 짜증만 내고 툴툴거리기만 한다. (p.92)

 

 

==> 세상 모든 딸들이...아니, 많은 딸들이 그러하구나.

늘 미안하고, 감사하면서도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자식들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속상하고, 세월이 흐른 만큼 심신이 약해지시는게 보여서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희생하는 모습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파서 늘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로 엄마 속을 긁어대는....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마다 왜 좀더 다정하게, 따뜻하게 설명해드리지 못했을까, 왜이렇게 투덜거리면서 나 힘든 얘기만 하다가 끊었을까 후회되고, 또 후회되지만 다시 통화를 할 때면 반복되는 상황!!

정말 늘 생각뿐이고, 마음뿐이지 참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

나중에..아주 나중에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를 하려고 이러는지...ㅠㅠ

 

 

 

부부란 대체 무엇일까?

통 안의 뾰족한 돌 두개. 서로 부딪혀 시끄럽고 깨지고. 그뿐인가. 누가 장난삼아 내리막길에 그 통을 놓고 발로 차기라도 하면 통 안의 돌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굴러가야 한다.

서로 부딪히고, 통 벽에 이리 쿵, 저리 쿵 깨지고 부서지고 서로에게 상처 주고, 약한 통 안의 돌들은 결국 통을 깨부수고 각자 뛰쳐나가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통 안의 돌들은 이런저런 아픔을 참으며 그 통 안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각자 차이는 좀 있겠지만, 통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돌들도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단지 통 안의 돌 두 개가 서로 상의하여 보이지 않는 바깥세상을 향해 힘을 합쳐 이리저리 통을 굴려보는 것이다.

힘들고 지치고 막막할 때, 서로가 지겨울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럴 때 마다 통 안의 돌들은 서로를 위한다기보다는 누가 나를 이 통 안에 넣었나 원망도 해보고, 누군가 자신을 그 통에서 꺼내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뛰쳐나가 보려고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그 돌들은 어느새 뾰족한 부분이 닳아 없어지고 둥글둥글 비슷한 모양의 돌이 되어 있다. 그래서 부부는 닮는 것인가 보다.

 

 

==> 정말 절묘한 비유다. 통안에 갇힌 두개의 돌!!

따로 떨어져 있고 싶어도 잠시만 흔들려도 부딪치고, 깨지고, 그렇게 서로 안고 뒹굴 수 밖에 없는 운명!!!

'내가 미쳤지! 결혼은 왜 해가지고!!" 그렇게 통 안에 갇힌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해보지만 어차피 꽉 닫힌 문은 열리지 않고...힘겹게 열고 나가려 해도 막상 그 안을 뛰쳐 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결국 부부란 함께 공유하는 그 공간 안에서 서로의 상처를 함께 하고, 어루만져 주고, 이해하면서 결국은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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