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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안녕 ㅣ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7
마거릿 와일드 글, 프레야 블랙우드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저희 집에는 작은 어항이 있습니다.
어항 만큼이나 작은 열대어 대여섯마리가 앙증맞은 꼬리를 흔들며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지요.
집안에 아이가 보살펴 줄 작은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도 좋을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집안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워낙 예민하고, 섬세한 열대어인지라 때로는 원인도 모르게 죽어있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어항 속을 들여다보며, 아침인사를 건네고, 죽은 물고기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아이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지요.
처음 물고기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는 "어떡해...불쌍해요. 얼른 건져주세요." 하면서
몹시도 안타까워 했습니다.
지금은 처음보다 훨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여전히 어항 속을 수시로 살펴보며, 물고기들의 상태를 살핀답니다.
작고 작은 물고기 한마리에도 아이의 마음이 이러한데...
안고, 부비고, 함께 뛰어놀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던 강아지가 없어졌으니,
주인공의 마음이 어떠할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프네요.
[이젠 안녕...] 참으로 슬픈 제목이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씩씩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담은
제목이 아닐까 합니다.
해리에게 귀여운 강아지 '호퍼'가 생겼습니다.
해리는 호퍼에서 여러 가지 재주를 가르쳐주고, 목욕을 싫어하는 호퍼를 숨겨주고,
아빠 몰래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해리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호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고로 호퍼가 죽었다는 아빠의 말에 해리는 "거짓말"이라고 소리쳤지요.
호퍼와의 작별인사도 거부한채, 해리는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호퍼의 보드라운 감촉, 호퍼의 익숙한 냄새, 반갑게 짖는 소리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요.
그런 해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밤중에 호퍼가 찾아왔습니다.
해리는 호퍼의 작은 몸을 꼭 안아 주고,
마당에서 둘은 함께 달리고, 몸을 부비고, 소리치고, 짖으며 신나게 놀았지요.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해리는 모든 일이 꿈인 줄 알았지만,
호퍼와 함께한 느낌만은 여전히 생생했습니다.
이제 해리는 겨울철 안개처럼 희미하고, 겨울철 공기처럼 차가운 몸으로
웅크리고 누워있는 호퍼에게 속삭여줍니다.
"잘가, 호퍼."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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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듯한 연필선으로 그려진 그림은 이야기의 배경 만큼이나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호퍼를 잃은 뒤 해리의 모습은 참으로 애잔하고, 슬프게 그려지지요.
멍하니 앉아있는 해리의 모습, 웅크리고 앉아서 호퍼를 기다리고,
침대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 등은 길고 긴 설명보다
그림이 주는 느낌이 훨씬더 전달력이 강한 듯 합니다.
[이젠 안녕]은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입니다.
슬픔에 빠진 아들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는 아빠 대신
묵묵히 바라보면서 아들이 스스로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봐주는 아빠가 있습니다.
이별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대처해야 한다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고,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그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그저...담담한 시선으로 아이의 모습을 그려줄 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아이 스스로 아픔을 이겨내고,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지요.
그렇게 이 책을 읽는 우리 아이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여백을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잘가, 호퍼"...책장을 덮는 순간 해리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하늘나라에 간 호퍼도...어렵게 호퍼를 보낸 해리도...모두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