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이다가 결국엔 감사히도(?)

회사엘 나가지 못하고 '하루 푹 쉬어'라는 말에 넙죽 '예썰!' 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늘 건강했다

같은 반 아이들이 독감이다 식중독이다 아폴로눈병이다 하며

결석하는것이 그저 신기했고 부러웠다

학교에 결석하는 것만은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부모님 밑에서

타고난 부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꾀병도 못해

거기다 타고난 신체 건강함으로 아프지도 못해

초중고 내리 계륵같은 개근상을 받았다

그랬던 나도 이제 연식이 좀 되었는가..

간밤의 열꽃축제같은 신열을 앓기도 하고

때때로 꾀병아닌 꾀병으로 결근도 하고 말이다

하루내내 커피 내려마시고 자고 책 들추다 자고 화장실 들렀다 자고..

해가 뉘역뉘역 질때쯤 정신이 반짝 깨어

옷을 꿰어입고 물 사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서점엘 다녀왔다

책의 생김새에 있어 이상형을 말하자면 나는 작고 가벼운 문고본을 좋아한다

외서에 비해 우리나라는 문고본이 그닥 널리 발간되는편은 아니지만서도

가방에 오만서른가지 다 넣고 다녀야 마음이 편한 신여성?으로써

두껍고 딱딱하고 묵직한 하드커버는 가지고 다니기에 부담스럽다

 (더 많이 좋아하는 편이 지는거라고..그래도 넣어 다니지만)

문고본은 손에 말아쥐기도 편하고 종이도 대부분 빛에 반사되어도 눈에 쨍하지않은

부드러운 재생지를 쓰고 물건을 찾느라 가방속을 헤집는 내 손을 모서리로 할퀴지도 않는다

 게다가 내용은 그대로 쏘옥

여튼 문고본의 잘생김 예찬은 이정도로 관두고

서점엘 갔더니 요네하라 마리의 문고본이 다섯권 진열되어 있다

그녀의 글이야 '넘나 잼난것' 인것은 이전에 읽은 몇권의 책으로 공인인증되었고..

작고 말랑말랑한 문고본이라니

짝사랑 남자를 우연히 만난 여자애처럼 신나서

계산을 치르고 김훈과 구효서의

신간을 택배로 받을 수 있도록 예약 해놓으니

연탄 뗀 구들장같이 마음이 흐뭇했다

오늘 밤은 배부른 만찬이겠다

 

 

 

알리사 와일러스타인의 라흐마니노프를 듣다가

웬걸 커플링된 쇼팽의 첼로 소나타에 푹 빠져 한동안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었다

1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음에도

몸에서 잠시 영혼이 빠져나가 한바탕 몸을 적시는 관능의 춤을 추고 돌아와 소진된 숨을 고르는 것같은 일종의 피곤이 나를 감싼다

그녀의 두텁고 격정적인 연주와

그 살갗에 닿는 피아노 소리가 이미 인이 박여

뫼르크의 연주는 어딘지 자맥질하는 듯한 인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