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름 탔더니 먹구름 나룻배 탔더니 조각배 시스타북스 Seestarbooks 8
이오장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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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전통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정형적 모티프를 녹여낸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콘티를 이어나간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리고 작품은 작품이라는 말에 맞게 때로는 작가 역시 무의식적 플롯에서 자기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작가에 의해 해석된다면 정통적 관점에서는 높이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굳이 어떤 메시지를 말하기 위해 문학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문학을 단순히 프로파간다 정도로 격하시키는 일이라고 비판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의 확산은 이런 접근을 정말 '정통적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최근에 영문학과에서조차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pc와 극단적 페미니즘에 의해 난도질 당하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나 문학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죄악시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고로 문학을 통해 폭정이나 지배계층의 위선과 가식을 폭로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뭇 작가들에 의하여 다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때로 아니 자주 해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전제정치에서 높으신 분들에 대한 소심한 잽이요 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 그것이 문학의 한 축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왜 폭력적인 액션 영화를 만듭니까?" 라는 질문에 ''재미있잖아요." 라는 짤막한 답변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재미있다. 인간은 유한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유한한 인간이 영화에서 무한한 위력을 발휘한다. 뻥 좀 거하게 쳐보자는 것이 아닐까. 여러 남초 사이트에서 썰푼다는 표현으로 비록 자신이 방구석에서 쳐박혀있는 찌질한 남자지만 언어의 세계에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자들과 원나잇을 즐겼다"는 개소리를 하는 것이 그런 것일지도. 문학의 쾌락적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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