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된 인생
김하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편 : 속된 인생
철거민 투쟁 현장, 돈밖에 모르던 아줌마 수녕과 빈민 공부방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보배. 그들 사이에 싹튼 우정, 새롭게 보이는 세상. 그리고... 

언제 한 번이라도 세상이 나를 인정해준 적이 있던가. 부모 형제 선생님조차 한 번도 나를 인정하고 받아준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보배는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나도 얼마든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희망과 꿈을 깨우쳐 주었다......

새로운 애인에게 빠지듯 나는 정신없이 보배에게 빠져들었다. 보배가 바라보는 하늘을 나도 함께 바라보았고 보배가 딛는 땅을 나도 나란히 걸어 나갔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산다는 건 꿈과 현실을 함께 엮어나가는 것이다. ............

"혼자 꿈을 꾸면 몽상에 불과하지만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됩니다." 그 당시 우리가 매일같이 함께 외우던 대사였다. ..... 가슴이 터질 듯 벅찼다.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정확히 외울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번 자유와 평등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맛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 역시 보배를 만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보배를 통해서 나는 이 속된 인생에서 믿을 건 꿈뿐이란 것, 그만큼 꿈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2편 : 바위가 파도에게
전경, 그리고 철거민 여인... 하루 밤, 하루 낮.. 딱 두 번의 만남. 

 일생을 못 잊어 그리워하는데도 일부러 안 만나고 사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데도 다시는 못 만나는 가슴 아픈 인연이 있다. 세번째 만났다면 분명 우리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 번째 만남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2백여 명의 전경들을 인간 성벽처럼 높다란 산등성이 위에 빙 둘러 세워놓고는 떡대 같은 장정들이 아줌마를 상대로 무자비하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력행위를 지켜보고 있으라고 명령할 수가 있단 말인가. 깡패들의 잔혹한 살육행위를 두 눈 뜬 채 지켜보고 방조한 우리 역시 저들과 같은 공범자들이다. 어쩌면 깡패들보다 더 죄가 무겁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 자면서 국민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다. 그런 군인이 국민이 매를 맞고 있는데도 지켜보고만 있다니.

 
3편 : 젊은 날의 선택
노동조합 활동에 손 꼭 잡았던 삼총사, 해고.. 그리고 갈림길

그 때 확신한 것은 목마르게 갈구하는 그 '꿈'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세 친구를 하나로 통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세상이 굴러가는 대로 그냥 살지는 않겠다는 꿈, 뭔가 잘못되었으면 반드시 고칠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라는 '꿈'이 그것이었다. 이 꿈이야말로 삼총사의 자부심이고 절대적 믿음이었다. 드디어 삼총사는 그 꿈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노동조합이었다. 

 처음으로 삼총사의 선언을 가슴에 새긴 것도 바로 여기였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밤이슬에 훌쩍 저 혼자 자란 것이 아니다. 저 혼자라 해서 진짜 저 혼자일 수가 없는 것이다. 심청이처럼 이 동냥 저 동냥, 동냥젖으로 살아온 우리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모든 동지가 다 들어 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신념을 꺽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신념을 꺾는다고 가정이 지켜지기는커녕 오히려 가정만 엉망이 된다는 걸 알았다. 가정과 신념은 하나다. 올바른 신념을 지켜나가야만 가정도 튼튼하게 지킬 수 있는 거다. 


 4편 : 청비리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 일가친척 모두 학살당하고, 가까스레 살아남은 아버지는 고향에서 도망쳐야 했다. 할아버지의 유품이 발견된 청비리를 아버지는 고향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어머니...어머니..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도시에 나가 살게 되면 우리 3형제를 버리고 어머니 혼자 도망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매일 매일의 일상을 견디며 사는 데는 거룩한 이념보다 이런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는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아버지를 사랑했다. 

5편 : 별 아래 횃불 들고
서울시철거민협의회.. 철거민 투쟁이 조직을 갖추어 전개되는 때, 그 생생한 투쟁 현장의 모습

깡패들이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야유를 퍼부으며 야금야금 밀려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깡패 몇 명은 아예 옷을 훌렁 벗기 시작했다.
"야, 이년들아, 내 좆 맛 좀 볼래?"
처녀들 같으면 혼비백산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이골이 날 대로 난 아줌마들로서는 그 정도는 농담 축에도 못끼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입이 걸진 몇몇 아줌마가 팔을 걷어 부치고 앞으로 썩 나섰다.
"없어서 못 먹는 판인데 아따 좋고 말고, 누가 말리나? 좆 구경이나 한번 실컷 해보자 뭐."
순식간에 알몸이 된 깡패들은 불알까지 덜렁대며 배를 쑥 내밀고 앞으로 썩썩 내려오기 시작했다.
"야, 거시기가 안 보이네 그랴. 추워서 오그라들었냐, 어디 붙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나이 지긋한 한 아줌마가 대범하게 응수했다. 그러나 젊은 아줌마들은 외면하며 뒷걸음질했다.
"야, 빨간 잠바 입은 년! 너 나하고 씹 한번 할래?"
벌거벗은 남자들 서너 명이 대놓고 아줌마들 앞에 알몸을 내밀자 아줌마들은 다투어 우루루 뒤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아줌마들로 짜여진 제3구역은 삽시간에 무너져 버렸다. 부녀자들이 어떻게 벌거벗은 남자들과 몸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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