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단편소설 열 편이 실린 <봉섭이 가라사대>는 좀 황당하다.
드라마를 보다 ‘이게 뭐야. 좀 황당한데…’라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뒤따른다. 아~ 꿈이구나. 그래서 황당했구나.
그런 꿈같은 느낌으로 이 소설은 쓰여 있다. 과장된 듯한 상황에다 구체적인 설명 같은 것은 아예 생략이다. 블랙코미디 영화같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은 한결같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걸레라는 별명이 붙은 ‘아영’이라는 여자로 시작해서, 전두환에게 복수하고 싶어했으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박’이라는 사내까지… 소설 읽듯 술술 읽어 내려가기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마음 힘겹다.
아이러니한 건, 다소 과장된 상황과 황당한 문체가 주인공들의 비루한 삶을 더 본질적으로 파헤치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거다.

첫 번째 소설 <상식적인 시절>에는 도통 상식이 없다. 주인공 아영은 어린 고삐리 세 놈에게 윤간당하고 매독에 걸렸다. 당시의 관습대로 윤간사건의 장본인들은 여론의 동정을 받았고 아영은 순진한 학생들의 춘정을 돋운 희대의 요부로 윤색되었다. 이쯤 되면 보통 울며 불고 좌절하고 평생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그러나 손홍규 작가는 그렇게 밋밋하지 않다. 아영은 그 도시의 오십 명의 사내에게 병을 옮겼고, 사내들은 제 애인과 뚝방촌의 논다니들에게, 그 애인들과 논다니들은 다른 사내에게 병을 옮기면서 도시 역사상 최대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아영의 입장에서 그건 상식 없는 도시에 상식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몇 년 만에 이 도시로 다시 귀향한 아영이 위선과 가식을 조롱하고, 상식이 뭔지를 일깨운 통쾌한 사건들이 시원하게 이어진다. 아영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예수의 기적에 빗대고 있다. 고아원에는 입양문의가 쇄도하고, 수험생들은 수능거부를 장정들은 입대거부를 선언했다. 종합병원이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이런 식으로 아영의 기적이 성경책의 한 구절처럼 이어진다. 아영의 나이 서른 셋- 예수의 나이와 동일하다. 위선의 탈을 쓴 부패한 교회 집사는 구속되었다.  

읽다보면 도덕성이란 뭔지, 올바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스러워 진다. 고매한 척 성경구절을 읊어대던 교회집사와 걸레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영- 작가는 나의 고정관념을 공격했다. 농담같은 꿈같은 이야기 속에 예리하게 숨어있는 칼날을 들이대며 작가는 묻는 듯했다. 상식은 무엇인가? 네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이 길들인, 권력이 길들인 고정관념이지 않은가?

<상식적인 시절>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최후의 테러리스트> <최초의 테러리스트>이었다. 테러리스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80년 5월 광주와 관련이 있다. 둘째 아들을 광주항쟁에서 희생당한 아버지 ‘박’은 전두환을 죽이겠다 마음먹는다. 총을 사서 사격연습을 하고 눈 오는 날 백담사 뒤편으로 등산하는 모험을 감행했으나 총은 분실하고, 얼어 죽을 위기를 겨우 피했다. 선무도를 연마해 젓가락으로 사물을 뚫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또 어이없이 실패했다. 위암으로 ‘박’이 세상을 뜨기까지 그렇게 사는 동안 가족들의 덧없는 인생도 펼쳐진다. 아내는 연탄가스로 죽고, 아들은 아버지의 총으로 이혼한 부인을 죽이려하다 외팔이가 된다. 외팔이의 아들이자 ‘박’의 손자 재호는 아버지를 따라 대마초를 피우고, 재호의 애인은 자살을 시도한다. 

다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이 게을러서, 운명이라서가 아니었다. 80년 광주가 있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시대가 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그들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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