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장편소설,『최선의 삶』
단숨에 읽어내려간 소설을 책을 한동안 책상 위에 두고 있었다. 뭔지 모를 난해한 감정이 표지 위로 먼지처럼 쌓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아람이가 되어서 강이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쓸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어설픈 위로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점차 당위가 되어갔다. 작가의 첫소설도 어쩌면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것을 써야만 한다는 것.
떨쳐지지 않는 과거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때가 있다. 거울을 보고 지느러미를 펼쳐야만 살 수 있는 소설 속 투어처럼. 상처의 봉합을 벌리는 행위가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내기 위해서 자신과 싸워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상처를 헤집고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삶의 방향은 달라지게 될 것이므로. 사실 이건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상처로부터 고개 돌리거나 이제는 다 지웠다고 자기 주문을 거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상처에 갇혀있지 않으려면 상처보다 더 큰 사람이 되어 나와야 한다. 집요한 악몽으로 되풀이되는 과거를 통과하기 위해 작가는 소설이라는 통로를 만들어냈다. 스노볼로 시작해서 스노볼로 끝나는 이야기.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지난 시간을 한 바퀴를 빙 돌고 돌아온 그는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무인 모텔은 재떨이를 닮았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나 쓰고, 아무나 더럽히고, 더럽혀도 다시 새것이 되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p.32)
화단에는 내가 던져버린 것들이 깨어지거나 구겨지거나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눈앞이 새하얘질 때까지 서 있었다. 사물의 윤곽이 사라졌을 때, 검게 다가오는 선 하나를 이명처럼 보았다. 주워들었다. 또각 부러졌다. 샤프심만이 하늘을 가볍게 날아 무사하게 착지한다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 (p.51)
<최선의 삶>에서 '샤프심과 재떨이의 태도'를 읽는다. "쉽게 부서질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부서지 않"을 수 있는 태도.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쥔 표지 속의 소녀처럼. 생채기를 열고 소녀는 걸어 나오려 애를 쓴다. 비틀거림과 넘어짐이 덤덤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전달된다. 이 아픈 이야기들이 직조해내는 무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멍든 부위를 둘러싼 다채로운 색깔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매만지며 오래 생각에 잠겼을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시간이 고인 문장들은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짐작하게 한다. 비슷한 온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풍경 하나를 꺼내본다.
비탈길을 마구 굴러가는 수박처럼 나는 내 몸이 무서워지고 굴러가는 것도 멈출 것도 무서워지고
공중에 가만히 멈춰 있는 새처럼 그 새가 필사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처럼 제자리인 것 같은 풍경이 실은 온 힘을 다해 부서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래들이 있다
-임솔아, 시「옆구리를 긁다」중에서
멈춘 것만 같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작가는 "온 힘을 다해 부서지"며 소설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잊고 싶은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제자리에서도 "필사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대변한다. 무언가를 오래도록 품고 난 후에 흘러나오는 에너지와 떨림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채기 깊숙한 곳에서 건져올린 것은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출구에 펼쳐진 풍경은 예상대로 스산했다. 그러나 짐작과는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곳을 오래 서성일수록,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온기가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