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폐허에서 - 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
판카지 미슈라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중국의 역사는 아무런 발전도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말하자면 중국과 인도는 세계사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C.W.F.헤겔, 1820

 

‘유럽인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핏빛 글자로 쓰인 ‘위대한’ 역사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수억 명에 달하는 비유럽인은 그 역사에 이제 막 접어들었거나 그 역사로 되돌아오고 있다.’ -레몽 아롱, 1969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머리를 식히려고 역사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불변하고, 그 역사를 톺아보며 정중동의 자세를 되찾을 수 있으니 복잡한 세상사 역사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뭐,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역사는 굳건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을 보면 여실히 느끼게 된다. 얼마 되지도 않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둘러싸고 좌우와 진보, 보수가 서로 갈려 한 치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세로 벌써 몇 달, 아니 몇 년 째 대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개인적인 호불호와 경향성의 여부를 떠나 역사를 바라보던 그동안의 인식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그렇게 서로 다르다. 교학사 교과서 파동처럼 그 배경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쓴 맛이 도는 역사 인식 말고도 역사는 매우 다양한 시각을 통해 재구성된다. <제국의 폐허에서>(책과함께)는 그런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제국주의 서구의 시선에서 재단한 아시아가 아닌, 그 당시 서구에 의해 핍박받거나 억압의 영향을 받던 아시아 지식인의 시각에서 본 아시아와 세계의 역사다.

 

이 책에는 ‘이슬람 세계의 마르틴 루터’로 불렸다는 알아프가니와 스승 캉유웨이와 중국의 무술변법을 주도했으나 100일 만에 실패한 량치차오 두 인물을 중심으로 타고르 등 근대를 살아간 다양한 아시아 각국의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서구 강국에 의해 속절없이 스러지는 조국과 아시아에 좌절하기도 하고, 그렇게 스러져가는 자국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변화를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서구를 따라 하기도, 서구에 저항하기도 하며 자신들만의 근대성을 성찰하기에 이른다.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 판카지 미슈라는 '오늘날 아시아를 형성한 규정적 계기는 양차 대전과 냉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가 아니라 인도의 세포이 반란,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터키와 아랍의 민족주의, 러일전쟁, 중국의 신해혁명, 일본의 군국주의' 등이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그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캉유웨이, 쑨원, 옌푸, 탄쓰퉁, 루쉰, 마오쩌둥, 타고르, 간디, 샤리아티, 호메이니, 오카쿠라 가쿠조, 도쿠토미 소호, 호찌민 등을 등장시킨다. 낯설다. 그만큼 아시아의 역사를 그동안 아시아의 입장에서가 아닌 서구의 입장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식인들의 풍요로운 사상과 상상력은 지금도 근대성의 위기에 직면한 사회를 위한 자원이 되고 있다. … 사실 거의 모든 토착 엘리트들이 미래를 둘러싼 다윈주의적 투쟁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서구를 물리치기 위해(또는 따라잡기 위해) 받아들였던 것은 유럽의 신념인 민족주의와 시민적 애국주의였다. 간디처럼 정신을 중시하고 반정치적이고 근대적 국가 건설에 비판적인 사람마저도 민족주의 지도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간디는 정치 경력 초깅 잠시나마 범이슬람주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자국의 전통주의적인 대중을 하루빨리 민족주의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2000년 역사를 지닌 유교 전통을 비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스만인은 이슬람의 칼리프 지위를 완전히 폐지하고,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포기하고, 터키를 근대 국민국가로 바꾸기 위해 이슬람 자체를 국교 자리에서 몰아내기에 이르렀다.'(제국의 폐허에서. 423p)

 

이 책의 미덕은 아시사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근대를 재구성하는 색다른 역사 인식의 눈을 밝혀주는 것뿐만 아니다. 서구에 종속되거나 대립했던 아시아의 근대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왜곡된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그 왜곡은 또 다른 변주의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서아시아의 갈등은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서구와 아시아의 갈등이 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중국이 21세기 초반 미국을 제치고 G1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은 이제 지배적인 견해가 됐다. 어떻게 보면 서기를 기준으로 1,800여 년간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국력이 강했던 국가였던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선다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제국의 폐허'는 이렇게 돌고 도는 모양이다. 이 독후감의 첫 머리에 인용한(이 책의 첫머리이기도 하다) 헤겔과 레이몽 아롱의 말들은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오남용을 경고하는 의미로 들린다.

 

그런 점에서 더 쓴 맛이 돌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교과서 논쟁이다. 더 다양한 관점과 더 넓은 시각이 아쉽다. 하기야 영수 중심의 입시교육에 맞추다 보니 역사 교육 시간마저 축소해야 하는 교육정책부터 바뀌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라크던, 이란이던, 심지어 파키스탄까지 '아랍'이라고 묶어 퉁 쳤던 얼마 전까지의 나 스스로의 모습도 다시 반성한다. 그리고 이 책,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사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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