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뿐이다.- P88텍스트죽기 직전 의식이 어두워지는 순간까지 기록된 이 텍스트는 밀드레드 배벨의 독백이지만 ‘일기’는 아닌 무엇이 된다(죽기 직전의 인간이 일기를 쓸 수는 없으니까!).그리고 여태껏 텍스트를 통한 현실의 재창조와 그 권한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다툼을 목격해온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과연 그녀의 독백을 기록한 사람, 그 텍스트의 창조자는 과연 누구일지 생각해보게 된다(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트러스트’의 작가 에르난 디아스에게로 시선이 향한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가 만들고자 한 텍스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생각해보면 우리 중 자기가 죽는 순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순간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이 말할 권리는 그렇게 폭 넓게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며, 대단히 유창한 언변과 시끄러운 확성기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나는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