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인간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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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도 인간이다. 하지만 서유미의 첫 번째 소설집 당분간 인간에 등장하는 직장인들은 당분간만 인간이다. 다들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무엇인가로 변하거나, 부조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직장인이기에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인간의 이야기들이 담겼다.

 

<스노우맨>은 폭설을 뚫고 출근을 하려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기록적인 폭설로 도시가 마비됐지만 남자는 회사 내에서의 자리 보존을 위해 출근을 감행한다. 삽 한 자루를 들고 눈을 치워 가면서. 출근길은 막막하다. 그러나 처자식과 함께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을 해야 하고, 회사에 나가야 하는 남자는 삽질을 멈출 수 없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에서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지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육아와 직장 생활의 병행을 위해 이 여자는 비밀리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로봇 도우미의 도움을 구한다. 그리고 이 여자는 완벽한 능력을 지닌 로봇 도우미에게 밀려 어느새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처지가 된다.

 

표제작인 <당분간 인간>의 주인공은 간신히 들어간 새 직장과 이웃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 때문에 점점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고 심지어 부스러지기까지 하는 기이한 증상에 시달린다. 반면 그의 전임자는 갈수록 몸이 물렁해지는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중이다. 증상을 감추며 버텨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주변의 상황은 힘들어지기만 한다.

 

<삽의 이력>의 남자는 도시개발의 기초 작업이라는 명분으로 무작정 공터에서 구덩이를 파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는 구덩이를 파는 족족 다음날이면 말끔히 메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 다른 남자가 같은 이유로 무작정 구덩이를 메우는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남자 모두 각자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무의미한 삽질을 멈출 수 없다.

 

서유미 작가는 일의 근원을 봤을 때 우리가 그러지 않나. 삽질처럼 너는 파고 나는 묻고. 근원적인 접근을 하면 그렇다고 말한다. 서른셋에 등단한 작가는 7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잡지사 기자였고, 일반 회사의 홍보, 학원 강사도 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직장생활을 한 발짝 물러서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독자들이 소설 속 직장인에게 오히려 깊이 공감 할 수 있는 이유다. ‘당분간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간답게살아가기 어려운 직장인들의 아이러니에 대한 공감이다. 이 책에는, 그러나 해법은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따뜻한 위로를 드릴 순 없는데, 내 삶만 고달픈 것은 아니고, 우리는 자기 몫의 삽을 들고 자기 몫의 눈 더미를 치우면서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을 갖고 가느냐는 것이고, 서로를 보듬고 바라보아 주는 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노우맨을 보면 (주인공이) 삽질을 하다가 편의점 눈사람을 보면서 웃는 장면이 나온다. 삽질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제자리 머물지 않고,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본 작은 위로가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것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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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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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크>는 “그래도 한 번 살아보자”는 이야기이다. 사생아이자 동성애자인 ‘성재’를 등장시켜 20대 청춘의 존재부재를 말하고 있다.

존재의 상실감은 청춘만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공감의 폭이 좁지도 않다. 존재가 부재한데, 미래까지 막막한 20대 청춘인 그들은, 우리 사회 속 중년의 모습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차이는 있다. 20대가 (사회적인간의 존재증명으로) 출발조차 하지 못한 막막함이라면, 중년은 다시 출발을 요구받는 막막함이다.

작가 김혜나는 지난 2010년, <제리>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해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제리>를 두고 “충격적이고 반도덕적인 소설”이라고 평했고, 작가를 두고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표정을 제시했다”고 했다. 정작 작가는 두 번째 책 <정크>를 출간하면서 “진짜 소설가라는 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작가는 전작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는 ‘루저’들에 불과한 청춘들을 다루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의 표현으로는 ‘루저 중의 루저’를 다룬다. 제목처럼 ‘정크(쓰레기)’다. 작가는 루저의 설정을 극단까지 몰아갔다.

“절망감에 빠져드는 청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제리에서) 비정규직, 대학도 안 가고 그런 설정에서 시작했다. (정크에서 성재는) 메이크업이라는 특이한, 소수군의 직업을 갖고 있다.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절망감, 자연스럽게 동성애로 갔다. 또 틀이 갖춰져 있는 모습이 아닌 깨져있는 가정을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있지만 아버지가 아니고, 애인이 있지만 내 애인이 아닌, 남들이 다 갖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는 없는 인물이다.”

성재는 심지어 약(책에는 ‘홀’을 탄다고 표현된다)도 한다. 사회적 루저이자 정기적으로 보건소에 들러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하는 성적 소수자인 성재에게 희망이 가능할까. 삶의 단 한 순간도 더는 견딜 수 없는 환멸과 고통, 그 절망의 끝에서 성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정크들의 존재론이다.

‘존재’란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축복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무시, 그리고 자기 비하와의 힘겨운 싸움을 통해서만 간신히 얻어 낼 수 있는 자격일지 모른다.

그나마 소설 속 ‘정크들의 존재론’에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온기’가 살아있다. 대학 졸업하고 5년 동안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던 작가는 좌절했고, 우울증을 겪었다. 그즈음 시작한 ‘요가’로 다시 살아났고, 등단했고, 소설가가 됐다.

작가는 “진짜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바닥까지 치고 내려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크>가 절망으로 내몰린 핼조선의 청춘들에게 섣부른 ‘위로’ 대신, 깊은 ‘공감’을 건네는 것으로 읽히는 하나의 이유이다.

 

"혀와 이가 얼얼해지도록 얼음을 부수고 또 씹었다.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내 몸 전체에 울렸고, 그것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갈라졌다. 그렇게 부서진 얼음이 곧 내 몸 속에 들어와 박혔다. 얼음조각이 쑥쑥 박힌 나의 장과 폐, 간, 심장 따위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 순간, 얼음이 영원히 녹지 않고 그대로 박혀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혜나의 <정크>(민음사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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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패권의 위협 - 베이징에 고개숙인 오바마
브렛 M. 데커 & 윌리엄 C. 트리플렛 2세 지음, 조연수 옮김 / 갈라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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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현재의 세계질서에 대한 혼란일까. 글쎄...어찌보면 중국이 오히려 용광로 같은 나라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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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김형철 옮김 / 서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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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행복한 사람으로 보인다. 최소한 일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일’, 즉 생산활동에서 즐거움을 찾았기 때문이다. (미하이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그의 저서 <몰입의 즐거움>에서 사람의 삶을 생산, 유지, 여가활동으로 나누고 일반적으로 각각 3분1의 시간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에게는 생산활동이 그의 인생시간 중 절반은 넘었지 싶기는 하다. 일을 사랑하고 일에 집중하고, 그 고통 속에서 깨달음까지 얻은 그이고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카르마경영>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들려주는 삶과 경영의 이야기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쇼이치로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힌다.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놓고 불교에 귀의하기도 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스물일곱살이 되던 해인 1959년 자본금 300만 엔에 28명의 종업원으로 교토세라믹주식회사(현 교세라)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 회사를 연매출 5조엔을 올리는 세계 100대 기업으로 일궈냈다. 그의 경영원칙은 원리원칙에 충실하면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믿음이다. 이는 교세라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내는 밑거름이 됐다.
 

<카르마경영>은 가즈오 회장이 교세라를 경영하면서 몸으로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여기서 깨달은 이야기를 쉬운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설득력이 높다. 성공한 경영자라기보다는 깨달음을 향해가는 구도자의 품새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물론 “인생은 사람이 생각한 것의 결과”라거나, “인생의 원리원칙을 사수하라”는 말, “우주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라”는 것 등은 <카르마경영>에서 처음 나온 문장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자의건 타의건 간에 보아왔던 여러 자기계발서의 공통 주제라고 할만하다. 
 

<카르마경영>에서 다시 반복되는 이 같은 금언들이 보다 설득력을 갖는 것은 이것이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경험을 통해 재현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해 온데다 구도자의 자세로 살아 온 그의 뇌를 거쳐 참으로 단순한 문장으로 이 책의 주제가 전달되고 있다. 
 

‘카르마=업’을 성공철학으로 내세우는 것도 독자들이 책의 주제를 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책 표지부터 언급돼 있는 카르마는 “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지고, 강렬하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책의 주제가 실상은 단 그 두 문장에 들어 있다. 
 

제조업으로 성공한 가즈오 회장답게 ‘유의주의’를 언급한 대목, 특히 ‘손이 베일 듯한 물건’을 만들라는 그의 표현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당시 중소기업인 교세라가 무리가 있어 보이는 글로벌 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던 것도 가즈오 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유의주의(뜻을 가지고 뜻을 기울이라)의 자세로 일에 집중해 ‘손이 베일 듯한’ 제품을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현장에 신이(답이 아니다)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그의 경영철학은 정말 끝까지 집중하는 무엇에서 출발한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포기하지 않고 집중하는 힘이 그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고 본다. 
 

그 집중이 “어제는 하고 오늘은 안 하고”가 아니라 매시간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는 흡사 게세마니 동산에서 한 예수의 말 “늘 깨어 있으라. 그 시간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와 같지 않은가. 예수는 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단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느냐”고 지적하는데, 어린 시절 그 대목을 되새기면서 괜히 부끄러움을 느끼던 내 모습이 <카르마경영>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라 새로웠다. 
 

가즈오 회장은 <카르마경영>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의 일을 1밀리나 1센티라도 앞으로 전진시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눈앞에 있는 문제해결에 쫓겨 매일 매일을 보냈다”고. 또 “ 그러나 인생은 결국 그 ‘하루하루’가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현재’의 연속”이라고 했다. 
 

현재를 사는 것. 그것은 쉽지 않으나 내가 살아가는 원칙으로 삼고 있는 금언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그리고 순간순간이 모여 내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대문 밖이 황천길”이라는 말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삶은 내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지금에 충실하자는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없으니, 채워서 보내자고 마음을 먹고 생활하고는 있지만 시간은 내가 채우기도 전에 ‘어느 틈엔가’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간 채우기에 나서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지 싶다. 
 

흡사 인생은 시시포스의 형벌로 표현되지 않은가. 알베르 카뮈가 그의 책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지적한 대로 시시포스는 기껏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지는 그 순간 ‘희미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을 자각하고 나면 이 운명에 반항을 하면서도, 운명 자체에 비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내 생각에 인간은 희망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라는 <남한산성>에서 김훈 선생이 표현한 말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그리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부자연스런 희망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빠져 나왔어야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희망’보다는 ‘실존’을 말한다. 그는 현재의 그를 있게 만든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존주의로>에서 “적어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보람찬’ 것으로 선택함으로써 겉으로 보이는 그의 운명을 초월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했다”고 썼다. 
 

삶은 순간순간 당면한 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순간에 최선을 대해. 때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시간도 긍정하고 자신의 실존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자기계발 서적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책들이 그 많은 조언에도 불구하고 ‘선배가 술 한 잔 기울이며 건네는 말’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대체로 희망을 과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카르마경영>의 경우, 자기계발 서적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경영자가 ‘이타심’을 이례적으로 강조해 도드라져 보인다. 이타심의 강조는 이 책이 여타 최고경영자가 쓴 책들과 달라 보이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실제로 퇴직금(?)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탁발승까지 자처한 가즈오 회장이니 ‘이타심’이 성공한 사람의 장식품 차원에서 거론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회 환원도 대선공약의 일환으로 여론에 밀려서 하면서, 측근들 중심의 ‘재단’을 만드는 방식으로 자자손손 먹거리를 챙긴, 어떤 현직 대통령과 비교되면서 ‘속임수’와 ‘진실’의 차이가 극명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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