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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수녀
돈나 레온 지음, 엄일녀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 추리할 것 없는 추리소설
「사라진 수녀」 / 돈나 레온
작가 본인이 추리소설이라고 했으니 그 말이 맞긴 하겠지만 내게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베네치아를 읽을 수 있는 ‘한가한’ 문화 소설로 다가온다.
그렇지 않은가? 작중에서 다섯 명의 노인이 죽고 한 명이 살해되고 또 한 여자가 칼로 살해될 뻔한 구성. 이 정도라면 여기저기 피가 튀고, 음산하고, 반전이 일어나고, 살을 맞대었던 애인이 살인마로 돌변하는, 뭔가 극적인 장면이 속출해야 할텐데 이 소설은 마냥 늘어진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베네치아의 따스한 햇볕과 수백 년동안 베네치아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그들의 문화가 오밀조밀 소개된다. 그런 가운데 슬쩍슬쩍 곁눈질할 수 있는 유럽 귀족들의 밀폐된 삶은 양념 이상이다.
종교. 그래, 종교도 언급된다. 종교에 대해 무척이나 삐딱한 작중 인물들이 별로 밉지 않고 비종교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더 종교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이 소설이 안 팔린단다. 당연하다. 람보 식으로 바바방 총을 갈겨대고, 부릉부릉 오토바이로 짓뭉개고, 섹스가 과도하게 넘쳐나야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 미국 스타일은 아니겠다.
전혀 긴장감을 주지않는 추리소설. 추리할 것이 별로 없는 추리소설. 답이 일찍부터 다 나와있는 추리소설.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들. 참 별난 추리소설이다.
번역자는 이게 첫 작업이라는데 문장이 좋다. 가끔 뻑뻑한 번역이 눈에 뜨이긴 해도 이 정도면 좋은 번역이다.
느리게, 쉬면서, 대화의 달콤함도 느낄 수 있는 소설.
- 원제는 Quietly in Their Sleep. 이걸 「사라진 수녀」라고 번역했는데, 글쎄---. 작가는 추리소설 냄새를 지우려고 했는데 번역자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갔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