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발자크라는 이름이 제목에 있어서 주는 느낌은 생소하다. 나 자신이 발자크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바로 동명의 영화 때문은 아니다. 우연찮게 알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쩌우쉰이 나온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보고나서야 이 영화를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글을 보고 나서였다. 아 이 책은 좀 읽어볼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꺼내들었다. 왜냐하면 이동진 평론가의 소개글 중에 책을 주제로 하고,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체험해보는 책이라는 그런 류의 소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이 하방(농촌으로 지식 청소년, 청년들이 내려감)한 청년들 사이에 묘하게 공통점과 공감점이 있었던 것이다. 내 비록 하방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내 자아를 뻗어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고 이 소설의 주인공 또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집어들고 나서 상당히 놀랐다. 두께가 너무 얇다. 200페이지. 게다가 한 페이지에 내용이 빼곡하지도 않고 상당히 가볍다. 아주 쉽게 쉽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거기다 성장소설의 느낌에, 시골로 온 지식 청소년들 사이에 우정과 사랑, 정부의 압제를 피해 문화를 향유하는 묘한 긴장감이 소설에 흐르며 상당히 가볍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인 것이다.
내심 삼각관계를 기대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2명의 남자들과 그 들 사이에 끼어든 시골의 아름다운 여학생, 뻔한 스토리는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것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나는 하지 않겠다.
그보다 소설에서 주안점으로 볼 것은 사회적 배경이다.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왜 서양 문학책이 불온서적이고 금지되어있는가? 왜 이들은 몰래몰래 책을 읽어야 하는가? 또 왜 그들은 농촌으로 내려가야 했는가?
이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책을 읽으면 반쪽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경은 이러하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문화, 옛것, 고전, 예절 등 많은 것을 망가뜨리고 소위 지식인이나 부자 계층 등을 공격하였다.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있지만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런 파괴적인 행위를 했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있다. 아무튼 홍위병이라고 불리는 소년들이 이를 담당했으며 그들은 자신의 스승을 욕보이고, 지주 계층이나 지식인 계층을 공격하고 봉건이라던지, 옛 것이라던지 들을 파괴하였다.
그들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웠는지 혹은 이제 파괴할 만큼 파괴했다고 생각되었는지 마오쩌둥은 이런 홍위병들을 하방이라고 하여 똑똑한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낸다. 그리고 시골과 농촌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다. 현재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 또한 이 하방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은 평가하기를 이 하방을 통해서 그는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단,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말 그대로 문화+대혁명 이기 때문에 구시대적 산물로 분류되는 책들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소설의 내용처럼 금서를 읽다가는 처벌당하게 된다.
이런 서슬퍼런 공포의 시기에 소설의 두 주인공은 농촌에서 생활해야했던 것이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A가 B를 감시하는 장면도 나오고 서적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없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왜냐? 걸리면 철창행이기 때문이다.
문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책에도 많이 나와 있으니 궁금하면 참고하면 좋을 것 같고, 내가 이렇게 문혁에 대해 다루는 것은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 문체 부분은 살펴보면 묘사가 비교적 상세히 잘 되 있는 편이다. 자칫 야릇하게 그릴 수 있는 몽정에 대한 부분은 조금은 비유적인 이미지로 그리면서 경박하지 않게 묘사하며 유쾌함과 해학적인 문체도 있어서 미소를 띄우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왜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소설에 대한 감상과 리뷰를 끝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나는 이 소설이 제목도 익숙하고 내용도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영화는 내가 본 것이 아니었다.
익숙했던 이유로 첫째는, 발자크라는 이름이 내게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문화대혁명 시기 하방을 해서 농촌에서 생활을 한 중국 청년들에 대해 다룬 작품들을 몇 가지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산사나무 아래에서'가 그러하고, 수업시간에 몇 가지 작품들을 다루어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꽤 신선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문혁에 대해 생소하고 중국문학 작품을 아직 안 읽어본 사람이라면 가볍게 입문서로 읽어볼만한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