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나 언제나처럼 담담하고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저자가 일상 생활의 가벼운 주제를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한 마디가 인상적인데, 아저씨와 젊은 여성 사이에 공통점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는데, 오히려 공통점이 적기 때문에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아저씨를 대상으로 글을 썼더라면 아저씨들끼리의 공통점에 맞추어 썼을 것이고 그러면 뻔한 이야기가 됬을 거라는 것이 하루키의 의견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해서 썼다고 하는데 남성인 내가 봐도 손색이 없이 빠져들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전처럼 저자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신선한 주제들을 던진다.


가령 이를테면,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는 사실 '개미와 매미'의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매미'가 북유럽에 없기 때문에 북유럽으로 이야기가 전해질 때 '베짱이'로 번역됬다는 것이다. 어쩐지, 베짱이보다는 매미가 노는 이미지가 더 확고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또한 그리스의 마라톤 주자는 왜 승전보를 달려서 전했을까? 말을 타고 전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그 해답을 찾는다. 말을 타면 적의 눈에 띄이기 쉽기 때문에 훈련된 사람을 통해 전하는게 더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저자는 소소한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당연한 것에 대한 물음이라던가, 뭔가 특별한 것을 캐내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들에 대한 비틈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 아닌가? 예술이란 기본적으로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보는 행위가 아니던가?


저자의 신변잡기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릍테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남들 앞에서 강연하고 말하는 것이 긴장되지는 않는다고. 다만 끝나고 나서는 피로하다고 한다. 대화하고 남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는 기본적으로 혼자 지내는 것을 편해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혼자서 달리기도 하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이 사람 참 나랑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김영하 작가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도 집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하며 지낸다고 했는데 말이다. 하하하.


이 책을 읽다보면 하루키를 만나 본 적이 없으면서도 마치 만나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내 앞에 하루키와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60이 다 된 아저씨가 내 앞에 앉아 있고 대낮에 커피를 마시면서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나무, 숲, 구름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기분인 것이다. 


아마 하루키의 잡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기분을 받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의 글이 주는 편안한 느낌, 무던한 느낌, 일상적인 느낌 말이다.


그나저나 사자는 왜 샐러드를 좋아할까? (굳이 하루키식으로 글을 끝내자면 이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라는 그의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된 천명관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가 묘사하고 이야기하는 서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나는 어느새 그의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익숙한 서사들을 이어서 새로운 변주곡을 써내는 그의 소설이라는 음악의 작곡가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보기로 선택한 것도 그의 작품 '고래'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강렬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겪는 비극들에서 나는 위안을 받았고, 그 강렬한 이미지와 이야기의 흐름 속에 빠져들어갔다. 비극적일수록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강력하다고 해야 할까.


'고래'만큼 비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브루스 리' 역시 기본적으로 비극성을 띈 소설이다. '브루스 리'라는 영화배우 역시 삶이 희극적이지만은 않았고 애석하게도 요절한 인물이다. 그를 따라 살고 싶은 삼촌의 인생 역시 비극과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아래 글의 내용 중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렇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이소룡이 나타나기를 꿈꾸고 어렵게 얻은 재산을 타인의 명의로 옮겨주는가 하면, 일부러 노파에게 자신을 신고하라고 하며 현상금을 탈 수 있도록 한다. 꿈에 그리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감옥에 갇히고, 한 번 사랑에 빠진 여자를 끝까지 사랑한다.


사회적인 시선으로만 어리숙하고 너무 순진해보인다. 작중 화자인 조카인 '상구'가 삼촌을 보는 시선이 그러하다. 왜 삼초은 저렇게 순진하고, 답답할까.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며 사는 걸까.


그런데 나는 그런 삼촌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발견했다. 그는 스스로의 철학을 가지고 사는 인물이다.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는 그에게 그녀의 사랑 원정은 묻는다. '왜 그랬어요' '내가 계획한 거에요'


그는 말한다. 본인이 계획해서 본인의 선택으로 감옥에 있는 거라고. 그는 원정을 만나기 위해 감옥에 들어가기로 선택을 한 것이다. 감옥살이는 그에게 더 이상 억울한 것이 아니다. 감옥은 원정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 것이다.


원정은 타국에서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영화계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신문에서 삼촌(화자의 삼촌)의 소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길로 삼촌을 만나러 온다.


아마 삼촌이 감옥에 갇히지 않았으면 원정도 만나지 못 했으리라. 그래서 삼촌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아주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원정을 만나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그는 종태에게 무술을 가르쳐 깡패의 길로 인도한 건 자신이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에 종태와의 싸움에서 져주고 갈비뼈까지 내어준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력이 있는데도 그를 가엽게 여기어 부채감으로 그에게 져준다.


결국 그 일이 더 안 좋게 흘러갔지만 그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남자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에 따라 더 큰 것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져버렸던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오순에게 원수 같았던 칼판장을 그녀를 돕기 위해 붙여주고 값비싼 중국집 명의까지 넘기며 그가 다음에 출소하면 그저 방 한칸 정도만 내어달라고 한다.


껌을 파는 노파에게 자신을 신고하고 현상금을 타가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노파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돈을 타가라고 한다.


그는 우직한 사나이였으며 무도인이었다. 그는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베풀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소설이 끝나고 작가의 말에서 천명관 작가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다. 깨지고, 슬프고, 괴롭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비극적인 인물을 만나고, 소설보다 더 정말 소설같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겪은 불행의 치수를 보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도 하며 새로운 세계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거칠고 힘든 시간을 겪을 지라도 우리는 현실을 산다. 살아내기 위해 그리고 그 용기를 다시 얻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원래 힘든거라고, 나만 그렇게 풍파를 겪는게 아니라고. 그렇게 소설 속의 인물들은 우리에게 위안을 건네며 다시 한 번 운동화 끈을 동여메고 달리기 자세를 취하도록 돕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에 대해 내가 느낀 것, 그리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바는 그 마지막 작가의 말 속에 다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이 지닌 비극성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인물을 보았다. '삼촌'과 같은 멋있는 사람을 본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자크라는 이름이 제목에 있어서 주는 느낌은 생소하다. 나 자신이 발자크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小裁縫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바로 동명의 영화 때문은 아니다. 우연찮게 알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쩌우쉰이 나온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보고나서야 이 영화를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글을 보고 나서였다. 아 이 책은 좀 읽어볼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꺼내들었다. 왜냐하면 이동진 평론가의 소개글 중에 책을 주제로 하고,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체험해보는 책이라는 그런 류의 소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이 하방(농촌으로 지식 청소년, 청년들이 내려감)한 청년들 사이에 묘하게 공통점과 공감점이 있었던 것이다. 내 비록 하방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내 자아를 뻗어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고 이 소설의 주인공 또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집어들고 나서 상당히 놀랐다. 두께가 너무 얇다. 200페이지. 게다가 한 페이지에 내용이 빼곡하지도 않고 상당히 가볍다. 아주 쉽게 쉽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거기다 성장소설의 느낌에, 시골로 온 지식 청소년들 사이에 우정과 사랑, 정부의 압제를 피해 문화를 향유하는 묘한 긴장감이 소설에 흐르며 상당히 가볍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인 것이다.


내심 삼각관계를 기대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2명의 남자들과 그 들 사이에 끼어든 시골의 아름다운 여학생, 뻔한 스토리는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것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나는 하지 않겠다.


그보다 소설에서 주안점으로 볼 것은 사회적 배경이다.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왜 서양 문학책이 불온서적이고 금지되어있는가? 왜 이들은 몰래몰래 책을 읽어야 하는가? 또 왜 그들은 농촌으로 내려가야 했는가?


이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책을 읽으면 반쪽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경은 이러하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문화, 옛것, 고전, 예절 등 많은 것을 망가뜨리고 소위 지식인이나 부자 계층 등을 공격하였다.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있지만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런 파괴적인 행위를 했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있다. 아무튼 홍위병이라고 불리는 소년들이 이를 담당했으며 그들은 자신의 스승을 욕보이고, 지주 계층이나 지식인 계층을 공격하고 봉건이라던지, 옛 것이라던지 들을 파괴하였다.


그들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웠는지 혹은 이제 파괴할 만큼 파괴했다고 생각되었는지 마오쩌둥은 이런 홍위병들을 하방이라고 하여 똑똑한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낸다. 그리고 시골과 농촌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다. 현재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 또한 이 하방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은 평가하기를 이 하방을 통해서 그는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단,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말 그대로 문화+대혁명 이기 때문에 구시대적 산물로 분류되는 책들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소설의 내용처럼 금서를 읽다가는 처벌당하게 된다.


이런 서슬퍼런 공포의 시기에 소설의 두 주인공은 농촌에서 생활해야했던 것이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A가 B를 감시하는 장면도 나오고 서적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없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왜냐? 걸리면 철창행이기 때문이다.


문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책에도 많이 나와 있으니 궁금하면 참고하면 좋을 것 같고, 내가 이렇게 문혁에 대해 다루는 것은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 문체 부분은 살펴보면 묘사가 비교적 상세히 잘 되 있는 편이다. 자칫 야릇하게 그릴 수 있는 몽정에 대한 부분은 조금은 비유적인 이미지로 그리면서 경박하지 않게 묘사하며 유쾌함과 해학적인 문체도 있어서 미소를 띄우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왜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소설에 대한 감상과 리뷰를 끝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나는 이 소설이 제목도 익숙하고 내용도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영화는 내가 본 것이 아니었다.


익숙했던 이유로 첫째는, 발자크라는 이름이 내게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문화대혁명 시기 하방을 해서 농촌에서 생활을 한 중국 청년들에 대해 다룬 작품들을 몇 가지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산사나무 아래에서'가 그러하고, 수업시간에 몇 가지 작품들을 다루어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꽤 신선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문혁에 대해 생소하고 중국문학 작품을 아직 안 읽어본 사람이라면 가볍게 입문서로 읽어볼만한 작품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 소설이라면 읽기 쉽다. 읽기 쉬울 뿐만 아니라 공감이 잘 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본다.


주로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보는 편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이번에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펼쳤다.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몇 편의 에세이를 읽어봤지만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이 에세이집 중 하나를 꺼내어 읽게 되었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이라고?


상상이 안 간다. 세일러복이라면 그 세일러문에 나오는 그 흰색 파랑색으로 이루어진 교복이 아닌가? 연필이 그걸 입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무슨 뜻일까? 여러 몽상이 오갔지만 우선은 작가가 일필휘지 하듯,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참 흥미롭다. '자유업에 대하여' 작가로서 프리랜서로서 하루키가 일상 생활에서 얻는 고충들에 대한 묘사이다. 이를 테면 은행에 일을 보러 가면, 보너스를 우리 은행에 저금하라던지, 보너스가 없다고 하면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던지, 아마 그 사람들은 하루키 책을 읽지 않나보다, 아마 그 은행 개인고객 중 상당히 VIP로 모실만한 사람을 못 알아보다니..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일단 눈물을 훔치고, 하루키는 문필업을 한다고 대답한다.


학교의 전공인줄 안다던가, 여러모로 하루키의 답변은 오해를 초래하고, 이 일상의 고충에 대해 하루키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그려내며 비교적 덤덤히 묘사하는 걸로 느껴진다.


프리랜서의 고충이랄까, 변변한 직업을 내세울 수 없는 사람의 입장이 절실히 공감되었다. 아 그렇지, S전자 다닙니다, H건설 다닙니다, 이렇게 명함에 익숙한 로고를 달고 건낼 수 없는 사람에게 그가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어도 일반인이 잘 모르는 이상 고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나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 하루키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도 이런 고충을 겪는다니 허허, 참 기가 차고 안타깝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에피소드가 아주 간결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들이 책에 꽤 담겨 있다.


하루키는 자기 주변 사람과의 일이라던지, 자신의 생활이라던가, 혹은 자기는 29세까지는 글을 쓰는 걸 잘 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일기(이를 테면, 완성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일기)는 쓰지 않았다는 이런 이야기를 적어낸다.


솔직히 조금 부럽다. 자기의 일들을 여과없이 이렇게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이 여러가지 방어벽을 치는 내게는 참 부러운 모습이었다. 작가는 원래 자기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녹여내는 직업으로 나는 생각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에세이처럼 자기의 생활을 이렇게 과감하게 글로 녹여내서 출판하는 것은 연예인이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처럼 내게는 쉽지 않은 일로 느껴지기에 참 용감하다는 느낌도 드는 것이다.


너무 솔직하게 글을 썼기에 좀 피곤했던 일도 있었고 괴로움도 좀 있었던 탓인지 글을 쓸대면 나는 자꾸 검열하게 되고 한 번 두 번 세 번 생각하는 습관이 붙었기에 글 쓰는 것이 영 쉽지가 않았다. 검열관들이 하나 둘 셋 모여서 내가 쓰는 글 하나하나에 자꾸 돋보기를 들이대고, 마약이라도 들었나 검사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하루키의 경우 물론 그 정도로 완전히 자신의 것을 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런 에세이를 써낸다는 것이 내게는 좀 부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각설하자면 하루키의 일상 생활과 삶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굉장히 심플하고 친근한 어조로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쉽게 쉽게 가볍게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읽어볼 수 있는 책이라 사료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텝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 / 알마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에 대한 리뷰는 많지 않을 것 같아 약간의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뒤로 하고 컴퓨터 앞에 섰다. 재미있게 봤고 기대도 했던 작품이기에 할 이야기들이 좀 있을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받아 13.67을 읽으려다가 이미 모든 책이 대출중이라 동명의 작가가 쓴 책을 검색하여 읽어낸 책이다.


이미 이동진 평론가로부터 받은 인상이 아주 훌륭한 이야기꾼, 마치 '고래'의 작가인 천명관과 같은 스토리텔러라는 평을 들었기 때문에 무한한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께이와 펫의 꼴라보인줄 처음에는 모르고 보았다가 그래도 단편 4가지 하나의 주제로 뭉치는 것이 인상적이라 그냥 읽어나갔다. 사실 께이의 이야기가 펫 보다는 더 자극적이며 더 몰입감을 주었다. 뭐랄가, 펫 역시 훌륭한 소설가라 생각되었지만 개인적 타입으로는 께이가 더 맞았다.


SF 미스테리물 같은 느낌이었는데 께이의 경우 스릴러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다. 범죄자의 심리가 께이의 단편 ep1, ep3 를 읽는 동안 굉장히 잘 다가왔고 그 순간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약간의 편견이랄까, 이동진의 '빨책'을 들으면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중국의 소설이 약간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께이의 약력을 보면 홍콩에서 대학을 나왔고 타이완의 추리소설 상을 받았다. 즉, 상대적으로 대륙(본토)의 영향으로부터 다른 중국 작가들보다는 덜 받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이공계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니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 또한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이나 미국의 소설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배경이 미국과 도쿄를 배경으로 한 이유도 있지만 작품에서 묘사되는 범인의 극단성이 오히려 일본 추리소설을 좀 닮지 않았나 싶었던 것이다.(나 자신이 중국의 추리소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다)


사실 펫 또한 께이처럼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다. 이야기인 즉슨, 컴퓨터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소설 속에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고, 여과없이 이 소설에서 이를 발휘한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정유정 작가 작품의 특징이 간호사 출신인 작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이것이 녹아져나오는 소설이 아니었던가!


바로 이 소설이 그러하다. 컴퓨터 공학과 출신 답게, 수감자들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것이 제제로서 작품의 중심에 다루어진다. 사실 약간 내게는 어려운 내용이라 중간 중간 어려운 것들은 스킵하고 읽기는 했지만 주제 자체는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SF같기도 하고, 미스테리인가? 범죄자와 탐정이 나오니 추리물 같기도 하고, 게다가 작가 2명이 단편 2편씩을 콜라보해서 써낸다니(사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각각의 작품이 연관되어 있고 특히 동일 작가의 작품의 경우 다른 작품이라기보다는 다른 에피소드라고 불릴만 하다) 이것이야말로 창의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중간 중간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전개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 갑자기 인물 A에 의해 인물 B가 범행을 실토하는 장면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묘사가 좀 아쉽다. 분명 쉽게 쉽게 읽히고 스토리 텔링 또한 나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비유라던가 묘사의 상세함에 있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그래도 내가 이 작품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재미라는 요소는 추리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교훈이나 정보습득이 아닌 재미를 위해 읽는 책에서 이것이 빠지면 붕어빵에 팥이 빠지고, 삼겹살에 소주가 빠진 격이다. 그런데 두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름답게 전개되면서 재미를 잡아주고 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에 기쁨을 금치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