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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 문학동네 동시집 74
송진권 지음, 정인하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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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의 잠자리 / 송진권

 

각목을 뚫고 나온
녹슨 못 위에 잠자리 한 마리
이불을 편다

 

요렇게 널찍하니 좋은 데를 놔두고
다들 어디가서 주무신댜 그래

 

- 송진권 동시집, 『어떤 것』(2019,문학동네)에서

 

 

* 가벼움의 경지가 저 잠자리 정도는 되어야 녹슨 못 위에도 앉아볼 수 있겠다. 송진권 시인은 내가 아는 한 새를 가장 가볍게 그릴 줄 아는 시인이다. 그가 알려준 매뉴얼대로 새를 그린다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누구나 그만큼 가비얍게 새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동시는 아슴한 추억과 슬픔이 배어 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지나간 어떤 것들이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말을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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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과 해변의 신
여성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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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의 첫 시집 에로틱한 찰리에서 오은 시인은 해설의 말미에 세계의 불화를 떠안고 있다가 놓아주기 위해 접는 일을 선택하는 시인으로 여성민을 읽고 있다.

에로틱한 찰리를 이미 읽은 독자라면 그의 첫 소설집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에서 구조를 변형하는 일’,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일에 그의 글쓰기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가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민의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패턴을 거부하면서 단단해진다. 어떻게든 패턴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말랑말랑해진다.

 

확신할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 낯선 장면들 속에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존재들…….

다정하지만 다정하지 않은.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자연스럽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각기 다른.

수평선.

 

 

그냥 사랑에 빠진 거에요. 세 명의 아일랜드인처럼. 하지만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일랜드인이지만 사랑에 빠지지 않은 아일랜드인일 경우도 있으니까요.

불가능해요. 아일랜드인이지만 사랑에 빠지지 않은 아일랜드인일 경우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어요.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애인이 빈 잔에 다시 흑맥주를 따랐다. 사랑에 빠진 세 명의 아일랜드인이라면 행복해 보여야 하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저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내 말은. 사랑에 빠진 행복은 아니라는 거예요. 진지하고. 단단하고. 깊이 결속되어 있지만 눈빛들,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어요. 서로의 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어요. 나무 위에 불쑥. 기린의 눈처럼. 기린은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기린은 늘 서 있지만 서 있는 기린은 서로의 눈 속에서 누워 있는 것을 찾죠. 수평선을 찾죠. 그러니까 저 세 사람은. 애인이 모자를 벗어 집사에게 건넸다. 사랑에 빠진 아일랜드인 세 사람은 아름다웠고 서로 다른 수평선을 지나왔어요. 누워 있는 사람들은. 슬펐고.

각기 다른.

슬펐고.

 

애인과 시인과 경찰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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