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제30회 한국 출판 평론상 출판평론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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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고대에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도서관이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 세계 지식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서고에는 엄청난 책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찬찬한 헬레니즘 문화의 발전과 함께 도서관은 성장했고, 화재로 사라지게 된 배경으로 정치적 상황과 전쟁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 서고 안의 찬란한 고대 지식들이 소실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인류는 조금 다른 모습의 문명을 만들 수 있었을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도서관에는 그 시대가 묻어나고, 역사의 흐름과 함께한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 동네에는 음악전문 도서관이 한 곳 있는데, 일반 서고뿐 아니라 다양한 클래식 음반 DVD 대여와, 정기문화공연까지 함께 하는 곳이다.

음악뿐 아니라 우리 지역(신도시)의 각 지구별 도서관은 영어원서 전문/어린이 전문/장애인 친화 등 각자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지금 시대가 도서관이 단지 아카이브의 공간으로 역할을 한정 짓지 않고, 문화의 장으로까지 확장되길 바라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도서관도 이에 맞추어 발전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 도서관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들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도서관이 정말 많고 그중에서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와 함께한 역사 깊은 도서관들도 많다.

이 책은 그런 도서관 30개를 추려 탐색하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책이다.

도서관의 숨겨진 역사적, 정치적 사건의 순간들.

나에게 낯익은 몇몇 도서관들은 그 흥미로움이 더 배가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책은 총 네 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

<1부. 도서관의 정치학> 은 정치적인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이야기한다.

<2부. 혁명과 민주화 투쟁의 모대>에서는 민주화운동의 투쟁 무대로서의 도서관의 이야기이다.

<3부. 제국에서 민국까지. 국가 도서관 이야기>는 국가의 권력에 의해서 설립된 국가 도서관 이야기가.

마지막 <4부. 사서도 모르는 도서관의 숨은 역사>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도서관이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역사깊은 도서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성균관이라는 최고 교육기관이 고려 시대부터 있었고, 그곳에는 존경각이라는 도서관이 있었다.

존경각은 조선 성종 때 설치되었고, 유교 서적이 주로 보관되어 있다가 고종 때가 돼서야 사서오경 외에 근대 학문들, 역사, 지리, 수학 등의 책을 보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존경각의 역사는 유학의 발전과 함께 했고, 양반과 유생들을 위한 곳이었기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했다.

지배층을 위한 도서관이었다.

조선왕조가 무너지면서 성균관의 역사와 전통은 끊겼고, 이곳의 수많은 책들은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졌다.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며 성균관은 친일파의 소굴로 변질되었고, 존경각은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광복 이후 성균관 대학이 들어서며 존경각은 다시 대학도서관이 되었다.

이후 6·25를 겪은 뒤 건물과 장서가 손상되었으나 이후 복구과정을 거치고, 새롭게 건물을 신축개관 한 뒤로

현재의 성균관대학교의 중앙학술정보관이 되었다.

한 곳의 도서관만 들여다 봐도 복잡한 시대의 흐름속에 도서관이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어야 했을지가 느껴진다.


경복궁 집옥재와 덕수궁 중명전(옛, 경운궁 수옥헌)만 봐도 다사다난했다.

책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진 고종은 경복궁 집옥재에 많은 책을 소장했다고 한다.

아관파천 이후 경복궁을 떠나야 했던 고종은 수옥헌을 짓고 왕립도서관으로 발전시키려 했지만 화재로 인해 서적들이 다 불타버렸다.

읽다보면 맨날 불타고, 부서지고, 뺏기고...우리의 근현대사는 도서관을 가만두질 않았다.

치욕적인 역사 현장, 을사늑약도 바로 이 수옥헌, 현재의 덕수궁 중명전에서 이루어졌다.

국권을 잃어야 했던 역사적 현장이 도서관이었다.


이후 근현대사의 파도 속에서 도서관은 친일파(옛 경성 도서관, 현 종로도서관)와 독재자의 손에 운명이 달려있기도 했고(정독도서관, 용산도서관), 일제 식민통치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과 유신정권, 군부독재 산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자리를 옮기거나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독재정부에 도서관 이름(대전 우남 도서관, 중앙대 우남 기념 도서관, 모두 이승만에게 바쳤다) 을 바친 이들도 있었고, 4·19,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한 민주화 운동들과 함께 한 도서관도 있었다.


특히 익숙한 도서관의 숨은 정치적 이야기를 발견할 때, 놀라움이 컸다.

개인적으로 남편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도서관이 정독도서관이고, 나와 함께 가서 책을 읽고 싶다고 요 근래 말한 적이 있는데, 정독도서관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니 흥미로워했다.

어렴풋이 자신이 알고 있던 정독도서관의 역사와 흔적을 책과 비교해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광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광주의 도서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평화로운 시기에 편하게 이용했던 그 시절의 도서관들이 이렇게 아픈 항쟁의 역사 속에 함께 했다는 사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어 여유가 생기면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이 책에 나오는 전국 방방곡곡의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그 속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 생겼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지만, 친숙한 도서관부터 찾아 읽었지만 점차 다른 도서관에 대한 흥미까지 불러온 책이었다.

도서관은 이제 단순한 지식의 창고가 아니다.

역사와 정치, 시대정신,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하고 있다.

책 읽는 사람은 줄었다고 하지만, 도서관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과 북미중심으로 설립되다가, 전 세계적으로는 20세기 이후에 이루어졌다.

과거의 도서관은 사실 지배층의 유산이었다.

이제 도서관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들의 평생학습을 담당한다.

또 앞서 우리동네 도서관을 소개하면서 말했듯, 문화 교류의 공간이 되었다.

미래의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이번에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겪으며, 시민들이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민주주의가치를 배울 수 있는 학습의 장이 학교와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생각해보았다.

혹시 탄핵이 기각되고 계엄이 또 내려진다면, 앞으로의 도서관은 또다시 정권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지, 민주주의 투쟁 무대가 될지 선택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고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도서관들은 오랫동안 남아 앞으로도 시대와 함께 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곳이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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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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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 작가의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는 열세 살에 조현병을 진단 받은 아들 '나무'와 그 가족의 18년 투병여정이 담긴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나는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 잘 알고 있다.

학부시절 실제로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의 개방병동에서 실습하며 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조현병은 폭력적이고, 위험하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편견이 강한 질병 중 하나이다.

물론 조현병 환자를 단 하나의 성향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내가 그때 만났던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과 열심히 싸우며 치료에 성실히 임했고, 사회복귀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실습생 신분으로 그들을 대할 때, 환자의 망상을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혹시라도 위협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순간이 있었다. 질병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 또한 사회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 고맙다.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의 긴 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보며, 우리가 가진 편견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정신 질환이다.

작가 윤서의 아들 '나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1만 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한다는 소아조현병을 진단받았다.

이후 정신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부모는 아이의 증상을 지켜보며 수없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부모로써 죄책감에 시달리는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감히 백프로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나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의 질병과 함께 하는 18년 동안, 윤서 작가는 어떻게든 삶 밖으로 튕겨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무'씨는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망상의 대상이 되고, 혼란과 공포 속에서 흔들리는 아이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 그 절망속에서도 엄마는 언제나 아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남아 버텨내야만 했다.

조현병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협받지 않은 일상의 유지, 그리고 가족들의 지지와 위로일 것이다.

저자는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겪는 '독박 돌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

자녀의 병을 부모가 책임지고 치료에 매달리지만, 조현병은 완치가 어렵다.

병의 증상을 줄이고, 사회로의 복귀를 도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몹시 지난하고, 가족들의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망상과 환각에 시달리는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상처는 점점 깊어간다.

나무의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이 조현병 환자의 가족으로 받은 상처와 회복의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생계유지와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감을 떠안은 가장, 그리고 주 간병인으로서의 부담과 죄책감에 시달린 엄마, 아픈 형제로 인해 소외받는 다른 형제의 상처.

그 모든 어려움에 이 가족이 꺾일까봐 걱정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다행히 가족들은 고통의 파도를 함께 넘으며 일상 속에서 각자의 삶을 만들어나갔다.

실제 조현병 환자의 돌봄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조현병 환자와 가족을 위한 사회적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환자 또한 한 명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소외받지 않고 적절한 돌봄을 받으며 자신의 몫을 해내도록 안전한 사회복지망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책에서는 조현병 발병 초기의 혼란부터 입퇴원을 반복하는 치료의 과정, 보호병동 생활, 그리고 전기자극치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또한 조현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독자들에게 조현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함을 거듭 강조한다.

무엇보다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향한 편견과 두려움을 거두어주라고 호소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가 접하는 조현병 관련 뉴스는 대부분 사건사고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위협하는 환자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두려움과 공포보다는, 조현병 환자 가족들이 겪는 슬픔과 사랑, 그리고 희망에 대한 것들을 더 많이 느꼈다.

나무씨의 가족은 오랜 투병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더욱 단단해졌고, 앞으로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해졌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볼 기회가 되기를, 그리고 그 속에 놓인 희망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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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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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는 <대 온실 수리 보고서>의 작가 김금희가 특별취재기자 자격을 부여받고 2024년 2월, 약 한 달간의 남극 세종 기지에서 체류했던 경험을 쓴 책이다. 대부분 과학자들이 가득한 남극 세종 기지에 작가 신분으로는 최초로 방문하여,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경이로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남극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끝없이 펼쳐진 하얀 얼음 대륙, 아니 하얗고 투명하다 못해 푸르기까지 한 얼음 세상 속에 생각보다 많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 펭귄과 갈매기, 바다표범, 고래 정도나 살 것만 같은 혹한 환경에서도 지의류, 이끼뿐 아니라 꽃이 피는 식물이 2종(남극좀새풀, 남극개미자리)이 있다.

잠깐의 여름 동안 남극의 생명들은 인간에게 약간의 틈을 내어주고, 긴 겨우내 무서운 눈 폭풍이 남아있는 생명을 모두 쓸어가버릴 것만 같은 곳에서도 생명이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앞이 보이지 않은 무서운 블리자드가 있는 극지.


이곳에 인간은 잠시 머물다가 왔던 그대로 돌아가야 하는 손님일 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 말고도 남극이 특별한 이유는 그곳이 아무나 갈 수 없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민간인이 자비를 들여 남극과 가까운 나라에서 관광용 크루즈를 타고 남극의 여름인 12월에서 2월에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비행 여정과 크루즈 관광 일정, 기후 상태도 고려해야 하니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다. 갈 때는 방한용품도 단단히 준비해 가야 한다.

그렇다 해도 일반인이 세종 기지를 방문할 수는 없다.


남극 세종 기지에는 일 년에 딱 2번 연구 대가 파견된다.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

과학 연구기지이다 보니 지질학, 생물학, 대기학, 해양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고, 기상대원, 안전대원, 조리대원, 중장비 및 기계설비 요원 등 특별한 자격조건을 갖춘 자들 중 선발을 거쳐 남극에 갈 수 있다.

보통은 이렇게 구성된 요원들 사이에 최초로 작가가 포함되었다.

작가가 그토록 남극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없는 것'을 향한 열망이었다.

인간도 거의 없고, 생물도 많지 않은 곳.

문명도, 주인도, 국경도, 경계도 없는 그저 압도적인 자연만 존재하는 곳에 주어진 만큼 머물고 싶었던 열망이 그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책의 전체적인 맥락은 세종 기지에서의 일상 보고였다. 그곳에서 연구원들을 따라다니며 동식물을 관찰하고, 대기 연구를 위해 풍선을 띄우고, 옆새우와 이끼의 표본을 구하는 일을 보조하기 위해 남극까지 굳이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남극 생활이 너무 궁금한 독자 중 한 명인 나는 이런 일상 보고마저도 너무 재밌게 읽어 내려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내용들이라 글만으로는 상상이 잘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는데, 뒤늦게 책 뒤쪽에 작가가 직접 찍은 남극 생활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글이 설명한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고래뼈 이정표라든지, 옆새우 표본, 인간 윷놀이, 그라운드 서클 같은 것들)


없는 것에 열망과 낯선 투지가 작가를 남극에 데려다주었지만 그녀가 남극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작가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그리고 작가가 그들과 일상을 만들어나가며 대면한 여러 감정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가 누구와 어디에 있든, 우리의 삶을 이루는 본질이 바로 관계와 감정,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한 번 더 공감했다. 남극에서 돌아온 작가가 딸을 걱정하느라 병이 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진짜 중요한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까지도 너무나 뻔하지만 울컥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책의 후반에 펭귄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쓴 문장을 통해 작가가 남극에 와서 진짜 얻고자 했던 것을 짐작해 보았다. 그것은 계속 꿈을 꾸고 도전하며 새로운 글을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는 힘이 아니었을까? 낯선 여행지에서 얻어 가는 삶에 대한 깨달음.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진짜 이유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되고 만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작가의 소중한 남극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귀한 교훈을 하나 얻어 간다.

남극의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감수성과 인간존재에 대한 사유가 듬뿍 담긴 문장들이 많다. 눈이 쏟아지던 설 연휴 기차 안에서, 너무나 많은 '있음'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없는 것들이 가득한' 남극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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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 - 한 권의 책이 리더의 말과 글이 되기까지
신동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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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과 글은 힘이 세다.

대통령의 언어에는 그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고, 이는 국정을 운영하는 바탕이 된다.

작가는 책이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독서는 나의 생각과 판단을 검증하고, 타인의 삶과 생각을 연결시켜준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사고력과, 판단력, 윤리의식,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그 누구보다 한나라의 지도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를 넘어, 대통령의 리더십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학 서적을 탐독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철학과 역사책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확립했다.

특히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인권을 생각했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좌우명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독서는 단순한 지식 획득만이 목적이 될 수 없다.

책을 읽으며 현존하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방안과, 국가 비전과 국정운영에 대한 생각을 싹트게 한다.

대통령의 독서는 한 사람의 독서가 아니다. 독서가 왕도는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대통령의 책 읽기는 개인적인 성장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국정을 운영하고 매 순간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사고력, 통찰력은 필수 역량이다.

편향되지 않은 사고와, 균형 잡힌 시각, 높은 윤리적 태도, 공감과 협치를 위한 설득력 있는 언어능력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이 책은 신동호 시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기고문, 담화문, 연설문들을 통해 그 속에 담긴 대통령들의 독서 흔적을 찾아보고, 대통령의 철학과 생각이 어떻게 글로 쓰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각 챕터마다 부록으로 실린 문재인 대통령의 각종 담화문과 연설문을 읽다 보면 그가 책을 통해 얻었던 지식과 통찰, 그리고 여기저기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연설문 전체 글을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대통령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그것을 어떻게 국정운영에 녹아낼 것인가 고민했던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의 본문에 소개된 추천도서들은 책의 부록 편에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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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새롭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30년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5060 마음 성장
김녹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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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늙고, 언젠가는 죽는다. 이것은 삶의 절대 명제 중 하나이다.

몸이 늙어가는 건 싫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나이 듦의 얼마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늙어간다는 것을 매 순간 인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주름과 건조함으로 피부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보습과 탄력, 주름개선에 효과적인 화장품을 고르고, 안 그래도 점점 더 가늘어지고 숱이 없어지는 모발인데 흰머리까지 잔뜩 눈에 띄고,

약통의 설명서를 읽던 중 남편과 나 둘 다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며 손을 쭉 뻗어 약통을 멀리하며 초점을 맞추다가 동시에 서로의 노안을 마주하고 서글픈 웃음이 빵 터졌을 때,

말하려고 하는 단어가 머리끝을 간지럽혀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을 때,

건강검진 결과에 '주의'니 '경계'니 하는 붉은색으로 표시된 이상 항목이 작년보다 하나 더 늘었을 때,

나와 주변인들의 상실의 경험이 쌓이고 서로의 슬픔에 공감해 주는 일이 많아지고, 요즘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이 한 박자 늦어질 때면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절히 깨닫는다.

아직은 40대 초반의 나이라도 늙어감에 대한 실제적 경험의 기회는 많다.

"어떻게 해, 우리 늙었나 봐"라는 말이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늙어감의 경험은 누구나 수시로 겪는 일 중 하나이다.

딱히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20대의 싱그러움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50대가 오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고 싶지만, 내 힘으로 단 1초도 늦출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나이 듦의 속성이다.

신체적인 노화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결국 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해진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 책의 저자 김녹두 작가는 이 책에서 나이 듦에 잘 적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화를 상실과 쇠퇴가 아닌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여기라 말한다. 그래서 삶을 성장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나이 듦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성장과 자기실현의 기회가 된다. 독자들이 자신에게 던져진 삶의 과제들을 현명하게 대하는 지혜를 갖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저자가 30년간 자신의 진료실에서 만났던 사례들을 들며 이야기한다.


1장 성장은 상실을 앞세우고 찾아온다에서는 나이 듦에 대해 대한 새로운 측면, 나이 듦을 상실과 쇠퇴가 아니라 성장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라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나이 들 것인지 삶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라고 조언한다.


2장 다시 푸는 관계의 방정식은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바로 관계다. 어떤 이들과 중요한 관계를 맺어 서로 사랑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단순히 다른 사람과의 연결되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기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이자 더 의미 있는 삶의 핵심이다.

있는 그대로의 늙어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나와 대화하고, 자녀와 부부, 사별과 이혼, 부모와 형제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엮고 풀어나갈지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의 양보다 질이다.

책 속에 소개되는 여러 관계에 나를 대입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나이 들어가는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삶의 후반기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고 소모시키는 관계보다, 서로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관계를 중심으로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나이가 들며 고립되는 것을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관계를 정리하고 이별하는 것도 나이 들면서 경험하는 관계의 중요한 속성이다. 모든 관계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관계가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그 관계가 나에게 준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3장 지혜와 감정의 성장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경험과 성찰을 통해 지혜가 더욱 깊어지고 감정적으로 안정되고 성숙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반드시 반성적 사고와 학습, 타인에 대한 감정적 공감과 이해의 노력이 있어야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한 번 더 짚어준다.


마지막 4장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다. 죽음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수단이며, 우리가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한다.

책의 마지막, 좋은 삶은 좋은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단계이지만,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지금 삶의 태도가 결정되기도 한다. 죽음을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라 여기고 매일 매 순간 자신을 믿고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자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 책은 특히 50대 60대가 노화에 따른 삶의 성장의 기회, 관계의 재정립, 내면의 성숙, 죽음에 대한 수용과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 등의 다양한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 심리학 책에 가깝다. 그러나 꼭 그 세대가 아니라도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노화와 죽음에 수렴한다.

어느 한 사람도 예외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지금 이 순간에도 늙어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보며 자신이 맺은 관계를 돌아보고, 삶을 이해하고 좋을 가이드가 될 책이라 생각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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