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날 메모리 도넛문고 9
민경혜 지음 / 다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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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은 항상 그때의 감정과 함께 우리의 의식 아래 저장된다. 좋은 기억은 좋았던 감정과 함께 더 좋게 포장되기도 하고, 안 좋았던 기억은 그때의 불쾌한 감정과 함께 더 안 좋게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한다. 기억은 이렇게 감정에 의해 변형되어 때로는 왜곡된 채로 저장된다. 작가는 이런 기억의 특징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서우진의 행성에서는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을 데이터화하여 의식에서 끄집어 내어 외부의 서버에 저장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기억이 왜곡될리 없이 팩트 그대로 저장된다. 필요할 때마다 그 데이터를 꺼내 살펴보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 편할 것 같다. 적어도 객관적으로 정리된 데이터가 있으니 하나의 기억으로 딴소리를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구인들은 다르다. 지구인에게 있어 의식과 연결되지 않은 기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보통 이런 기억들은 잠재의식,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지만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기억이 있는 경우 우리는 그 기억을 부정하거나 망각할 수도 있고, 나에게 유리하게 변형하고 왜곡해서 저장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자아를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작품 속의 주요인물인 은경(아라의 엄마), 아라, 채린도 그랬다. 셋 모두 자신의 기억을 어느 정도 부정하고 망각하고 왜곡한 채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을 피하고 있었다.


작가가 두 소녀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소녀 모두 아빠의 부재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있다. 상처를 대하는 둘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아라는 그저 주목받지 않고 체념하는 태도에 익숙해진 채 자신의 상처들을 숨기고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아라는 자신과 다르게 매사에 당당한 채린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채린도 아라가 마음에 든다. 자신이 겉으로 웃지만 속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거나, 울고 싶은 자신을 대신하여 울어주는 아라가 곁에 있어 좋다. 하지만 그런 친구가 곁에 있어도 외로웠고, 답답한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다. 순간순간 모든 것을 잊게 하고 쾌감을 주는 일탈의 행위, 어쩌면 이 일탈의 끝까지 가다 보면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두 소녀가 상담가인 우진을 만나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마주하고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을 분출하고 오해를 해결하며 화해를 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이 기억을 저장하고 꺼내는 과정에 감정과 생각이 덮여 기억은 끊임없이 변화하겠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과 창의적 사고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죽도록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시간이 흘러 세월에 바래지면서 '그땐 그랬지, 그런 경험을 했으니 난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어려움을 또 잘 극복해 낼 거야'라든지 '아 그땐 몰랐는데, 이 경험은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었고, 이런 통찰력을 주었어'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변화하는 기억은 우리에게 사유와 성찰,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마음을 다독여주는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불러온다.


작가는 상처뿐인 것 같았던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분명 그 안에 숨겨진 사랑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라는 기억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설움을 대신 뱉어내주고,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 주려 했던 채린의 마음을 깨달았다. 채린 또한 자신을 내내 걱정해 주던 아라의 마지막 표정, 가장 편했던 친구를 가장 만만하게 여기며 비겁하게 행동했던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이 둘 옆에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함께 하며 사랑으로 지지하던 좋은 어른들도 분명 있었다. 불완전했던 기억을 새롭게 꺼내보며 그동안 놓치고 있거나 잊었던 것들을 찾고, 사랑과 우정을 깨닫는 과정에서 위로를 받고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가며,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둘은 결국 기억을 넘어 서로의 마음이 닿게 된다. 그들이 만난 것은 그들 속에 잠들어있던 기억뿐 아니라 그때의 감정과 회환, 그리고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두 소녀의 상처와 갈등을 딛고 일어서는 우정과 화해의 순간이 멋진 소설 『우리가 만날 메모리』였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망각.
직윈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을 지워 버린다. 기억이라는 것이 불쑥불쑥 예고없이 찾아들어 자꾸만 쿡쿡 쑤셔 대며 상처를 남기기 대문이다. 그 잔인한 기억으로 인해 자신이 더 다치는 것을 보고싶지 않기 때문에 그 기억을 차라리 모두 지워 버리는 것이다. 까맣게 지워 버려야 살 수 있는 것, 지구인에게 기억이란 종종 그런 것이다. - P120

그저 오롯이 이 지구 여행의 기억을 내 불완전한 의식, ‘마음‘에 저장해 두고 싶어졌다. 시간이 흘러 내 기억이 부정확해지고, 내 기억이 흐트러져 꾸며지고 왜곡되고, 그렇게 먼 훗날 이 경험들이 희미하게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그러고 싶어졌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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