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거탑 - 소설 방송국 기업소설 시리즈 4
이마이 아키라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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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소설 : 유리거탑




지난 9월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나온 기업소설시리즈 중 '플리태넘 타운'이라는 일본 기업소설을 아주 인상깊게 읽은 바가 있다. 그 때 기업소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그 전에 나온 '유리거탑'으로 다시 한 번 기업소설에 입문하게 되었다. '유리거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NHK의 '프로젝트X 도전자들'이라는 실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실화 속 도전자들의 이야기. 실제 있었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국내에도 2002년에 '프로젝트 X의 도전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가 나온 적도 있었다. 프로젝트 X는 엄청난 드라마도 아니고 엄청난 리더나 혁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어려운 시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과 감성을 울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는 그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마이 아키라와 디렉터들이 있었다.


스 씨, 부탁합니다. 나 좀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이번에 찍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만한 게 사막 저 편에 있습니다! - p. 13


소설 유리거탑에는 그런 이마이 아키라의 소설 속 분신이나 다름 없는 '니시 사토루'가 있다. 지난 이마이 아키라의 노력과 업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소설의 첫 부분에서는 실제 이마이 아키라가 일본 문화청 예술작품상을 수상하게 만들었던 걸프전에 대한 '타이스 소령의 증언'을 취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취재 거절을 전면에 내세운 노부부를 어떻게 촬영할 수 있었는지, 또 타이스 소령(소설 속 더든)에 대한 다큐는 어떻게 찍을 수 있었는지 놀라울정도의 열정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운명은 노력하는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역경 속에서도 길은 반드시 열린다. - p. 303


니시 사토루는 당연한 수순과도 같이 이마이 아키라처럼 문부성에서 주최하는 예술제 대상을 타고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예술제 금메달 수상 디렉터가 된다. 그런 니시 사토루는 '사라진 에이즈 보고서'와 같이 많은 작품을 만들고, 수많은 상을 거머쥔 채로 디렉터에서 프로듀서로 전향하게 한다. 본인과 같은 열정을 가진 디렉터들과 함께 열정을 무기로 내세워 한편한편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챌린지X의 작품들. 처음에는 한자리수로 전혀 보잘 것 없는 시청률을 보였으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입소문을 타고 두 자리수 대로 진입하더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그렇게 챌린지X는 여러 분야와 얽혀 제2의 수익까지 창출하게 되고 전일본TV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는다. 프로듀서인 니시 사토루 또한 그 인기를 함께 거머쥐며 최단기간에 이그젝티브 프로듀서까지 올라가는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소설 속 전일본TV의 회장에게 눈길을 끌어 그의 라인으로 승승장구하며 야망과 꿈을 불태우는 니시 사토루.


저 멀리 전일본TV협회 빌딩이 보였다. 전에 이 테라스에서 저 빌딩의 정점을 향해 야심을 불태웠던 날이 떠올랐다. 빌딩은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저 탑에 살면 예리한 유리 파편에 마음을 베인다. 유리에 비친 애처롭고 일그러진 자신이 보였다. 한번 탑을 떠나면 다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유리 갑옷에 몸을 감싸고 타자를 거부한다. 니시는 테라스에서 바라본 유리 탑이 산산이 부서지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빚어낸 아시아의 괴물은 결코 스러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 온갖 추문까지 전부 집어 삼키고도 끄떡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니시 사토루는 미동도 없이 우뚝 솟은 유리 거탑을 노려보았다. - p. 406


그의 도전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이번엔 그를 음험하게 적대하는 세력들이 불쑥불쑥 복선으로 등장한다. 원래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홀로 치고 올라가면 주위가 그를 끄집어 내린다는 말이 있듯 혼자 저 위까지 올라가자 그의 성공을 질시하는 무리들이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공작을 하기 시작한다.


기업문화에 정치란 빠질 수 없는 필요악이다. 그리고 니시 사토루는 그런 음험한 정치의 세계에 대처하기엔 너무나 대쪽같고 물정을 몰랐다. 회장라인이었던 니시 사토루가 라인이 무너지고 나자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는 챌린지X라도 지키고자 했지만 한번 파멸의 길로 들어서자 그것마저도 요원한 일이 되고야 마는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의 감동스토리를 전하던 니시 사토루.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그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잃고 점차 건강까지 나빠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결국 이마이 아키라의 내부고발 소설과 다름이 없다. 니시 사토루의 대부분은 본인의 이야기이며 소설 속 전일본TV란 NHK를 대체하는 말이다. 걸프전의 더든은 타이슨 소령이며 그 외에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여러 부분에서 눈치챌 수 있다. 거대 기업에서 이런 부조리는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일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하는 직원들이 한 사람을 추락시키기 위해 벌이는 음험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읽는 내내 소름끼치게 만든다. 순수했던 열정은 공작으로 인해 허무하게 스러지고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람 역시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져간다.


또한 언론이 무언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실을 어떻게 은폐하고 어떤 식으로 정보를 날조하는지 무섭도록 현실감있게 눈 앞에 묘사가 되어 보여진다. 인간만이 정치를 한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누군가에게 가혹한지. 그 것의 원인이 실수도, 무능도 아닌 그저 그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라는 점이 더욱 씁쓸하고 또 안타까워진다. 아이드카(attention(주목), interest(흥미), desire(욕망), conviction(확신), action(행동)의 5단계를 거치는 소비자의 구매 심리 과정)와 같은 용어도 알 수 있던 굉장히 인상적인 기업소설 '유리거탑'. 현실과 픽션을 적절하게 섞어 몰입력이 대단했다. 기업 속 부조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강력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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