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구매
백선경 지음 / 든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각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심장으로 따갑게 꽂히지 않았다. 그날, 그 창고에서 강렬하게 그녀를 희롱하던 햇살이 심장에 도달하지 않아 과거는 또 파괴되지 않았다. - pp. 16-17

 


공동구매 해보셨나요? 지금은 잘 참여하지 않지만 카페며 블로그며 공동구매의 열풍이었던 적이 있었죠. 지금은 잘 몰라서 예전만큼 활성화되어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 붐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엄청 커진 시장이었죠. 이런 공구의 특성을 이용한 스릴러가 있다고 해서 흥미진진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요. 익명성을 이용한 사기행각과 피해자들 사이에서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그를 다루는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는데 생각과 다른 소재라 더 신선했어요.

 

 

인적이 드문 협곡 깊숙이 들어가 어둠이 내릴 때까지 누워있었다. 햇살이 물러 간지 오랜데 소환된 기억의 공포는 물러가지 않았다. 공포를 뿌리 채 뽑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해가 지면 분노하는 본성을 잃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기억의 덫은 분노하지 못하는 그녀를 옭아매고, 더 큰 공포 속으로 침잠시켰다. - p. 34

 


백선경의 공동구매는 장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사건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가정에서 좋지 않은 일을 당한 화영이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이야기가 그 하나고, 나머지 하나는 거구의 봉제공장 잡역부가 직장에서 모함을 받고 잘린 후 취업이 뜻대로 잘 되지 않자 아는 디자이너의 조언을 받아 주부생활만세라는 카페를 만들어 김치를 판매하는 이야기예요. 두 이야기는 엇갈려 보여지며 도저히 하나가 될 것 같지 않다가 끝에는 이런 류의 전개가 그렇듯이 합쳐지게 되는데요.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더라구요. 저는 거의 결말부까지 관련성이 별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날,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우발적인 적의와 잔인함이 무질서하게 섞여,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빗소리가 맹목적인 습관처럼 속도를 높이다 늦추다 하는 사이사이, 강하게 내리치는 천둥번개는 세상을 모두 날려 버릴 듯이 위협적이었다. - p. 36

 


주세만은 김치를 판매하다가 공동구매 쪽으로 카페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데요. 스탭들이 받는 수수료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그에 따라 스탭이 되고 싶어하는 회원들, 공구가 진행되는 이야기들, 업체들에게 카페가 받는 대우가 달라지는 모습들이 실제같아 재미있었어요. 카페에서 물타기하는 회원들, 친목도모하는 회원들, 친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의 이득을 위해 갈라서는 모습 등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라 현실감이 들더라구요.

 

 

공구제품 10개 중, 일단 잘 길들여진 5명으로 첫 공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 p. 191

 


그리고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요. 화영의 복수와 콜린의 주부세상만세, 즉 주만세 카페가 어떻게든 이어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공구 물품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이어지더라구요. 상처를 입은 여자들이 모여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그 복수의 정도가 이런 소재에 비해 미미했다는 것도 왠지 있을법하구요. 그러다가 목적성이 변질되어 복수보다는 물품의 내용에 주목하는 것도, 그리고 처음에는 동의했던 조항들을 반박하는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불만이라 재미있네요. 다만 마지막에 화영의 아버지와 오빠간의 공방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여튼 꽤 신선했던 백선경의 공동구매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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