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 도시텃밭 그림일지
유현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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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땅과 하늘이 좁아 주말이면 어떻게든 이 구역을 벗어나 숲으로, 강으로 향한다.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에 담겨 살 떄는 싱싱했는데 포장을 벗기자마자 시들기 시작하는 풀을 먹을 때마다 딱 내 먹을 거리만 재배할 텃밭 하나 있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켠에는 내가 좋아하는 허브와 꽃도 조금 심어두면 더 좋겠고. 


아득히 먼 꿈이라고 여겼는데, 책을 보다 엎어두고 주말 농장을 검색했다. 내가 너무 비장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아스팔트 바닥 좁은 틈바귀에도 피는 게 꽃이고 풀인데, 너른 곳에서 만반의 준비로 완벽하게 하려 든 건 아닐까. 생기가 넘치는 문장들에 마음이 동했다. 


페이지의 날짜와 제목을 확인하며, 글과 그림을 보며 올해 봄에서 여름으로 어떻게 옮겨가고 있는지를 떠올렸다. 벌레의 등장, 잎이 피어 열매를 맺고 크고 지는 과정, 날이 가물어 걱정이고 태풍이어서 걱정인 시간들. 기록하지 않았으면 흔하게 지나쳤을 순간들을 쌓아 쉴새없이 바뀌는 계절의 농담을 담아낸 책이다. 매일 같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달라지는 '순간'들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일상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꾸밈없는 문장들에서 새어 나오는 활기와 기쁨, 땅 위 존재들과 주고 받는 사랑을 읽으며 도시의 텃밭 로망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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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페어 컬처 -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볼프강 M. 헤클 지음, 조연주 옮김 / 양철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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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 년 전, 친구와 유별난 CS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의 지인이 해외의 아주 큰 섬유 회사 CS 직원인데, 어느날 그 회사에서 만든 카페트가 해졌으니 기워 넣을 원단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를 받았다. 직원이 알기로는 회사에서 카페트를 판매하지 않아서, 브랜드와 회사 이름을 다시 물어보고 여러 번 재확인 요청을 했는데 고객은 여기가 맞다며 오히려 화를 냈다. 


"글쎄, 우리 할아버지가 결혼할 때 샀다고요. B 회사에서 만든 거요!"


부모님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결혼하실 때, 그러니까 최소 5~60년이 지난 일이었다. 회사가 작았던 시절에 소량씩 제작해서 판매했던 카페트였던 것이다. 회사에 보고 하고, (당연히) 해당 원단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자 고객은 '그럼 어쩌라는 거죠?'라고 반문해왔다고 한다. 


당시 친구와 나는 '별나다'며 이야기했다. 너무 오래된데다, 더이상 그 제품을 취급하지도 않는 회사에 뭐하러 전화하냐며. 하지만 그 이후로 이 이야기는 종종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회사는 자사 제품 기록용으로도 남겨두지 않았을까? 판매했으면 AS를 위한 최소한은 보관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보관을 위한 비용이 필요할테고, 그럼 그게 또 소비자가에 포함되겠지. 뭐가 정답일까? 자꾸 다시 생각하게 됐다. 


[리페어 컬처]는 이런 내 질문을 짚어준다.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쓰고 버리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 경제 구조와 그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더 효율적'인 산업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방향은 아님을 말한다. 물리학자인 작가답게 근거에 기반하여 아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쓰고 버리는 게 당연한 물건을 만드는 기업들을 비판하지만,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소비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다. 작가는 계속 질문한다. 기업이 재활용 가능하게, 혹은 더 오래 쓰도록 제작 단가를 높여 제작한 뒤 비싸게 팔면 우리는 수용할 것인가? 우리가 기업이 그런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의도와 의지를 갖고 선택, 행동해왔던가? 효율을 택한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수리하고 수선하는 작가의 기록들을 보며, 지금의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안이하게 산업의 흐름대로 살고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리페어 컬처라 읽고 '자율적인 삶'이라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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