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나비 날아가다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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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제목에 끌렸다. 작가의 소개를 보고 또 그가 쓴 다른 책들을 보고 작가에게 무한 신뢰가 생겼다. 괜찮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으로 시작한 책읽기는 거의 예외가 없다. 이번에도 역시나 적중이다.

책 속에 두 주인공 김삿갓과 홍경래는 개인적으로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짧은 지식으로 홍경래의 난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별개의 인물로 알고 있었지만 그 둘은 꽤나 기구한 인연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그 사실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우리가 아는 방랑시인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이고 별호가 김립(金笠)인데 ‘삿갓립’자를 풀어 김삿갓이라 한단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했기에 그냥 자신이 좋아서 방랑시인인 줄 알았는데 사연을 알고 보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행한 운명을 탓해야할까. 불행한 천륜을 탓해야할까. 참 안 됐다.

어릴 적부터 머리가 영리했던 김병연은 닥치는대로 서적을 섭렵하여 모르는 글이 없을 정도였다.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는 유일한 길이 과거급제였기에 20세의 나이에 영월 백일장에 나가 <정시의 충정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임을 통탄하라>는 시제를 받게 된다. 운명의 장난이 시작되는 걸까.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리 없던 김병연은 가슴속 울분을 토해내듯 정시는 충신으로, 김익순은 천하의 역적으로 비판한 답안을 작성하고 과거에 급제하게 된다. 하지만 곧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게 된 그는 조부를 그렇게 몰아세운 자신을 원망하고 죄를 용서받는 길로 평생 구름처럼 떠도는 방랑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김익순이 저런 죄인이 된 사건의 실체에 홍경래가 등장한다. 홍경래 또한 어릴 적부터 영특하고 문무에 모두 뛰어났다. 하지만 당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는 힘이 없고 외척이 권세를 장악해 허울뿐인 왕이었다. 부패한 조정에서 서북사람은 중용하지 말라는 용정책이 내려졌고 서북인이던 홍경래가 평안도 용강에서 난을 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홍경래의 난’이다. 그 난의 대원수였던 홍경래는 부대를 이끌며 가산, 박천을 함락시켰고 정주와 선천까지 치고 들어왔는데 가산 군수였던 정시는 홍경래군과 끝까지 대항하며 충의를 지키다 희생됐고 선천 부사 겸 방어사 김익순은 저항 한번 없이 바로 항복하였던 인물이다. 시제가 그렇게 정해진 내막에는 이러한 역사적 진실이 숨어있다.

차별받는 현실과 자신이 처한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꿔보려 했던 홍경래와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보단 회피하고 소극적으로 삶을 이어간 김병연의 인생 행로가 상당히 비교된다. 이런 결말을 가져온 둘의 인연이 참으로 고약하긴 하지만 홍경래는 세상을 바꾸려던 야망을 결국 이뤄내지 못했고 김병연은 자신의 방랑 인생으로 남은 가족들이 애태우며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무책임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홍경래의 난은 서북인을 차별하는 조정에 대한 반항이자 대표적인 농민운동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조정은 그들의 외침에 전혀 관심도 반응도 없었던 것 같다. 무능한 집권자와 부패한 대신들의 모습에서 지도자와 그 참모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 현재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그 모습이 지금과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다. 잠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김병연이 방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서 금강산 시승과 만나 게임을 하듯 시를 주고 받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부분이 상당히 재밌고 유익했다. 김삿갓이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역사적 인물로 존경받는 이유가 비록 자신의 운명을 정면 승부하진 않았지만 방랑하며 남긴 수많은 시가 가진 작품성에 있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시대에 나서 다른 인생을 산 사람이지만 그들이 꿈꾸던 삶은, 세상을 향한 외침은 결국 같은 곳을 지향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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