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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평점 :
모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판매하는 상품 중에 '어린이용 메이크업 키트'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을 사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도 그런 비슷한 것은 있었지만, 구매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고 대개는 모양을 흉내만 낸 가짜 장난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요근래 판매하는 제품들은 실제로 화장을 할 수 있게 내용물이 들어있으며 수요도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점에 방문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자연스럽게 자주 보게 됐는데, 내 세대 때보다 화장을 한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비율도 그렇지만, 특히나 화장하는 연령이 더욱 낮아졌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들도 적지 않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정말 절실하게 생각한다. 이미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혹은 "'선택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이미 한국의 현실이다.
이민경 작가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그야말로 '페미니즘 실천서'였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빻은 질문'에 어떻게 대항하느냐가 <우리에겐~>의 내용이었다. <탈코르셋:도래한 상상>은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언뜻 '탈코르셋 이론서'처럼 보이는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있었던 탈코르셋 논의에 대해 쭉 훑어내려가며 맥을 짚어주는 한편, 탈코르셋 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반박들에 오목조목 답글을 달았다. 탈코르셋 운동가들에게 언어를 보태준 셈이다. 저자는 연구가로서의 입장을 넘어, 또 한 사람의 참여자로서 몫을 보태고 있다.
여성들은 왜 '맨얼굴'을 기본값으로 여기지 못하게 됐을까? 수업에 늦었는데도 화장을 하는 사람,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고서야 '제한된 이동성'을 깨달았다는 사람, 아파서 살이 빠진 것을 보고 '부럽다'고 했던 여자 친구들과 스스로도 기쁨을 느꼈던 사람, 생활비 때문에 보일러를 틀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옷을 구입하는 사람……. 이러한 관습적이고 뿌리깊은 '규범'을 탈출하기 위해선 강력한 '탈학습'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꾸밈을 통해 '자기대상화'를 체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단순한 꾸밈의 문제를 넘어서 가부장제에 종속되게 되는 그 흐름과 사회 전방위적인 세뇌를 고발한다. '탈코르셋'에 대한 정의와 논의를 이 책에서는 꽤 폭넓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여아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고삐에 매여 끌려가다시피 해요.
미용 산업 쪽으로요.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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