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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땐 그냥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 혹은 비극적인 성장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살인을 저지른 소년, 그로 인해 멈춰버린 시계, 알코올 중독인 엄마, 조숙한 소녀. 어쩌면 익숙한 설정들이라 긴장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장을 넘기고 나니 그건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더 많이 분노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끝까지 안아주고 싶은 아이 ‘더치스’를 만나게 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케이프 헤이븐이라는 외딴 마을이다. 햇살이 아름답게 내리쬐는 절벽 끝의 마을이지만, 그 안엔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과 잊힌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마을의 경찰 서장 워크는 정의감으로 움직이기보다 죄책감과 오래된 비극에 붙잡혀 살아가는 인물이고, 살인자 빈센트는 모든 걸 잃은 채 돌아온 망자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더치스다.
더치스는 열세 살이다. 하지만 열세 살의 말투도, 행동도, 감정도 거의 없다. 그녀는 자신이 동생을 지켜야 하고, 엄마를 돌봐야 하고,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세상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걸 태어나면서부터 알아버린 아이. ‘나는 무법자야’라고 스스로 말하며 벽을 쌓지만, 그 안에 있는 건 사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싶고, 가장 지켜지고 싶은 아이일 뿐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 그리고 그래서 더 응원하게 된다.
작가는 그런 더치스를 아주 거칠게,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세심하게 그려낸다. 더치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친 말과 날 선 행동들 뒤엔 언제든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아이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 그녀가 애써 담담하게 진실을 마주하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동생의 손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여러 번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의 대단한 점은 단순히 ‘감정적’인 장면을 쌓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촘촘하게 얽혀 있고, 반전과 서스펜스도 곳곳에 숨어 있다. 게다가 그 반전이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과거, 관계, 상처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더 몰입감을 준다. 마지막 몇 장에서는 아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한 번에 끝까지 달려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선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많은 비극과 배신이 쌓여도, 더치스의 마음 어딘가엔 끝끝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살아 있다. 그녀를 바라보는 워크의 눈빛도 마찬가지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지키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이 책이 전하려는 가장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선 진심으로 더치스가 잘 살아가길, 이 잔혹한 세상에서도 어딘가 따뜻한 손을 잡고 웃을 수 있길 바랐다. 우리는 모두 ‘작은 무법자’였던 시절이 있다. 이 책은 그 시절의 나를 마주보게 하고, 동시에 오늘을 사는 아이들을 이해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