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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8월
평점 :
‘세계 언어문화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수식어를 빼놓을 수 없는, 조승연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건 JTBC의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이전에도 7개 국어 가능자라고 방송에 소개되는 것은 몇 번 봤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건 <말하는 대로>가 처음이었다. 우연히 만난 한 문장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자 자신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부터, 금도 파라곤에 대어봐야 가치를 알듯이 어떤 사람이나 나라나 조직 또한 어려운 상황에 대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파라곤 정신’과 나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펜싱의 ‘투셰’라는 이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쳇바퀴 같은 시간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비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등 수식어에 가려져 느낄 수 없었던 조승연의 진짜 이야기, 진면목을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프랑스에서 4년 동안 생활하며 느끼고 깨달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책을 냈다. 제목은 <시크 : 하다>.
서문에서 우선 그는 행복에 대해 ‘경제력과 상관없는 하나의 노하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만큼 살기 편리한 곳도 드물지만 더 불행해하는 한국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지혜는 프랑스인의 ‘주관’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p.6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그리고 그 주관은 끊임없이 돈이 없으면 초라하고 권력이 없으면 억울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에 우리가 들이밀 수 있는 최고의 방패다. 내가 만난 프랑스인의 주관은 매우 선명하고 강했다. 그들은 남이 불편해하건 말건 그 주관을 표현하고 지켜나가는 데 거침없고 용감했다.
그의 삶을 바꾼 15 ~ 20명의 프랑스인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자기 인생을 ‘성공했다’느니 ‘실패했다’느니 하는 정의를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나는 나’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였다고 한다. 프랑스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이러한 ‘이기주의적 주관’ 또는 ‘쌀쌀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문화와 너무 달라서 확 와 닿지는 않았지만, 분명 좋은 부분도 많았다. 영원히 사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해질 것으로 보이는 시대에 어린 시절부터 ‘메멘토 모리’-삶은 죽음이라는 엔딩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를 가르치는 나라, 지금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미각을 교육하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 괴로운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는 여정이 아니라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기대되는 일’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빚을 낼 수 없기에 물질적 풍요는 덜 누리더라도 갑자기 직장을 그만 두어도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나라라는 점 등이 그렇다.
p.127
여기서 이기주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기적’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하나는 ‘에고이스트egoist’이고 다른 하나는 ‘에고티스트egotist’다. 후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남에게 필요한 것보다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기주의를 뜻한다. 하지만 전자는 남 신경 쓸 것 없이 자기 만족도가 높은 삶을 좋게 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프랑스인의 이기주의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즉 개개인의 행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기주의’라면 조승연 작가의 의견처럼 눈치 보느라 불행한 우리가 한번쯤 참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서로 자신의 행복을 우선하는 사회’라면 뒤죽박죽 엉망진창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 사회도 그 나름의 균형과 질서가 있다는 게 참으로 흥미롭고 또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더 명확하구나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p.23
한국의 운전 문화는 ‘다른 사람에 맞추어 내가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서울의 올림픽대로에 진입하려고 하면, 이미 진입 차선을 먼저 달리고 있던 차는 속도를 늦추어 내가 먼저 진입할 수 있도록 양보를 하거나, 아니면 속도를 높여 나를 앞질러 간다. 나 역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에 맞추어 눈치껏 언제 진입을 하면 좋을지 적절한 시간을 찾는다.
… 이런 ‘눈치’ 운전 문화는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진입할 때 상대편이 속도를 올릴지, 내릴지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운전 문화는 남에게 나를 맞추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움직이든지 나는 가던 대로 간다.’ 이런 운전 문화의 장점은 다른 운전자의 행위를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프랑스의 순환도로에 진입하려고 하려고 할 때, 이미 순환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는 절대로 속도를 늦추어 나에게 양보를 하거나 속도를 올려서 나를 앞지르거나 하지 않고 그저 가던 속도 그대로 갈 것임을 안다. 그러면 나는 속도를 늦추어 그 차 뒤로 들어갈지, 반대로 엑셀을 밟아 그 차 앞으로 들어갈지 계산하기가 쉽다. 이렇게 프랑스인의 운전 습관에서 엿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삶’에 대한 갈망이 파리를 지금과 같은 골동품 도시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리에 살면 살수록 나는 무언가 할아버지 시대의 자명시계처럼 구닥다리 톱니바퀴가 고장이 날 듯 하면서도 용케도 잘 돌아가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그에 동화되었다. 그 편안함의 정체는 바로 삶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프랑스식 편안함의 정체다. …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예측 가능한 삶에서 오는 편안함에 대한 갈망은 ‘불편함을 즐기는’ 수준이었는데, 아파트로 대표되는 편의시설이 집중된 93-94구역이 가난한 동네의 표상이 되었다거나(이는 서울의 강남이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이 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다른 자동차를 알아보는 것 보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아버지의 차가 더 편해서 아버지와 같은 모델의 차를 구입한다거나, 같은 이유로 휴대폰을 잘 바꾸지 않고, 심지어는 TGV 개통을 결사반대하기도 한단다. 이밖에도 우리나라 문화와 달라서 흥미로웠던 부분들이 참 많았고, 더불어 생각해볼 만한 거리들도 많았다. 어떤 문화, 어떤 사고방식이 더 옳다거나 좋은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아래의 내용만큼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193
꿈을 꿈으로 남겨 둘 용기가 없는 사회는 자꾸 사람에게 ‘꿈을 이루어라’라고 말하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가르친다.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내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먹고 놀면서 느끼는 ‘즐거움’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어쩌면 프랑스인은 진짜 성공한 인생이란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고, 진짜 행복한 인생은 행복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주어진 순간에 충실한 인생일 수 있다는 결론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