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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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작품들이었다.

다만 요즘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서인지 작품들이 대체로 인공지능을 제재로 하고 죽음이라는 모티브가 일괄적으로 들어가 있어 비슷한 주제의식으로 편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요한 물음은 인간성의 규정,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구분점이란 무엇인가, 차가운 창조자인 인간과 따뜻한 자유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한 안드로이드 중 누가 더 인간적인가, 그런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었다.

중단편 모음집이라 술술 읽혔는데 대상인 <관내분실>과 <독립의 오단계>가 인상적이었다. <관내분실>은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개념을 넣은 것 외에는 어려운 과학용어 없이 일반소설과 흡사하게 잘 읽혔다. 다만 어느 정도의 가까운 미래냐 먼 미래냐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힘든 것이, 뭔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엄마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딸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는 줄거리 속에 엄마의 불행했던 연원이 결혼으로 인한 경력단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상용화되는 미래에는 이런 여성의 직업활동에 대한 사회적 제약은 해소되지 않았나 하는데 작품 속 세계관은 그러지 못해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만 마지막 부분은 좋은 엔딩장면으로 기억된다.

가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대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인데 이 작가 기대된다. 젊은 과학도인데 궁금하여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작품활동에 대한 의욕이 충만해 보였고 무엇보다 청각장애가 있어 불완전한 발음을 할 때도 있지만 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도 흥미롭긴 했는데, 먼 미래의 어느 시점 장대한 거리를 여행하는 우주 항법의 획기적인 발달이 달성됐고 과거 항법과 새 항법 사이에서 정책적인 이유로 인해 가족과 유리된 삶을 사는 노과학자의 애틋한 사연이 나왔다.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그 시대에는 가족과 생이별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매개할 수 있는 항법을 쓰던지 아니면 정책상의 배려가 있던지, 이래야 더 그 세계관에 맞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은 <독립의 오단계>인데, 막 독립성에 눈뜬 안드로이드가 법정에 선다는 구성이므로 논리적인 반박이 이어져 현학적인 문체가 곁들여지기도 하지만 흥미로웠다. 작품에 나온 대로 아마도 미래에 가서는 사고로 인해 몸의 일부분을 잃게 되는 경우 사이보그 수술로 잃어버린 신체를 대체하여 완전체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거 같기는 하다. 작품 속 미래에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결정적 차이는 자궁으로부터 태어났는가 인간에 의해 창조된 기계냐이다. 주인공 편의 인물들은 자궁과 골반을 포함하여 신체의 65%을 잃어 사이보그 수술로 보완한 인간(중년의 여변호사)과 뇌의 일부만 살아남은 남자의 신체를 재구성한 안드로이드이다. 이 안드로이드는 소유주인 인간 뇌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인공지능으로써 점점 주체성을 자각하게 되는데 여변호사를 마음 속으로만 '어머니'라 지칭하다 마지막에 가서 실제로 어머니라 부르며 기계 일련번호대신 이름을 갖게 되면서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는다. 자궁을 잃은 여성으로 본인 육체로는 생명을 생산할 수는 없지만 안드로이드가 독립적인 인격체로 거듭나면서 모자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상징성이 드러나 흥미롭다.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중년 여성은 차가운 재벌 2세 과학자 및 경영자로 자기가 낳은 아들을 평생 자기의 통제하에 두려 했고 이에 대항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들 뇌의 일부에 아들의 신체을 대체할 안드로이드를 생산해 여전히 지배하려고 한다. 이로써 인간과 기계 중 누가 더 인간적인가, 누가 더 모성을 발휘하는가 하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신체의 상당부분을 기계로 대체한다는 설정에서 어떻게 인체 기능이 유기적으로 복원되는지 간략한 설명이라도 없어 아쉬웠다. 또한 안드로이드 신체에 탑재된, 뇌의 일부분만 남은 남자가 또 다시 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뇌의 데이타가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에 전송된다는 내용만 있지 어떻게 생체 조직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추출하여 데이타화하고 전송될 수 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안드로이드 안에서 사체가 된 뇌의 일부 조직이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 그대로 탑재된 상태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상태라면 그 안에서 부패할 텐데 뇌사 이후의 조직 상태에 언급이 없어 의아했다. 법정에서 주인공 안드로이드는 법정 구성인인 판사와 검사의 ‘지능증축’ 뇌구조를 스캔하는데 이렇게 피의자인 안드로이드에게 무방비적으로 스캔당하는 설정이 의아스러웠다. 이는 아마 1인칭 시점이라 그랬을지 모르나 차라리 여변호사의 입이나 제3의 정보로 ‘지능증축’이 표현되는 설정이면 더 개연성이 있었을 듯하다. 또한 여변호사가 사고를 당한 이유가 판사였던 아버지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인간에 의한 폭탄 테러였는데 이런 사고쯤은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미리 예방/제압 가능했거나 피의자가 좀더 우아한 방법으로 복수하지 않았을까. 전반적으로 내용을 무거운 문체로 담아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갑자기 휙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 여운을 느끼기에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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