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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은 제목부터가 눈에 야릇하다. 영휴(盈虧)라는,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다. 한국어로 달의 '참과 이지러짐'이라는데, 아마 일본어 제목도 이렇게 풀어쓴 것(月の滿ち欠け) 같지만, <달의 참과 이지러짐> 이러면 느낌이 안 나서 그런지 말이 길어서 그런지 생소한 한자어를 넣어 간략하게 번안 제목을 뽑았다. 작중에 영휴의 개념 설명이 나오는데 태초에 인간에게 선택권을 준 죽음의 두 방법 중 하나이다. 자손을 남기며 죽는 방법과 환생을 하는 방법. 이 환생이 달의 영휴처럼 이승에서 현상화된다. 환생이 있다면 작품에서처럼 사람이 죽고 그렇게 빨리 다시 태어날까 싶은데, -주호민의 <신과 함께>에서도 착한 영혼은 49일만에 환생하기도 하고-이 작가의 세계관은 이러려니 하고 좀 의아해도 넘어가자.
이 작품에는 오싹할 정도로 주인공 여성의 환생이 여러번 나오고 그 전에 모두 어린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전개는 마치 소멸되지 않는 업장의 되풀이같다. 주요 모티브는 작중에서도 언급된 <안나 카레니나>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유부녀로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지다 기차에 치여 파국에 치닫는. 이 작품은 안나 카레리나의 사후가 덧붙여진 환생 버전이랄까. 처음에 연하남과 사랑에 빠질 때 그렇게나 사랑했을까 갸우뚱할 정도로 당시 여자의 행동은 담담하지만, 나중에 가서 주로 서술로써 그 사랑이 목숨도 각오하고 환생도 불사할 정도로 강렬했다고 추론된다. 워낙 루리의 사랑과 집념이 크다보니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같은 환생 이야기에 빨려들게 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과 거듭되는 환생이 강한 에너지를 행사하면서 주변 인물들의 삶은 무력하게 가정이 파탄나거나 영락하거나 고독하게 되는데, 마지막 즈음에 가서 어쩌면 분량 면에서는 남자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별 존재감 없던 오사나이와 아내의 사랑이 갑자기 생명력을 얻게 되는 전개가 탁월하다.
오사나이의 아내 역시 오사나이가 알지 못한 예전부터 몰래 흠모해 왔었고, 역시나 그 사랑에 미련이 있어 환생을 한 것인데, 이로 보면 이 작품의 주요 여성들은 겉모습과는 달리 인류 대다수가 맞이하는 죽음의 형태를 거부하고 환생을 불사하는 강렬한 사랑의 실천자들이다.
끝으로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 소설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독자가 각자 이미지화해서 읽고 감상하면 되는데, 영화에서는 잘못하면 로리타 컴플렉스로 연결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