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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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25편의 단편집으로 구성돼 있다. 일부는 커트 보니것이 살았던 50~60년대의 풍취가 있는 단편 소설이고, 일부는 SF 소설이다. 읽다보니 O.Henry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O.Henry의 단편 소설들에서 유머와 반전이 자주 나오는데, 보니것은 여기에 풍자를 더한 느낌이었다. 문체 중에 절묘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나 묘사들도 종종 구사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실린 소설은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인데, 이전에 읽었던 <포드 패밀리>의 변주로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족의 성이 포드에서 슈와츠로, 연도가 바뀌고 있고 디테일에서 다르지만 큰 줄거리는 같다. <포드 패밀리>를 재밌게 읽어 커트 보니것에 대한 흥미가 생겼었기에 이 변형 소설도 아주 재밌게 봤다.


커트 보니것이 일관성 있게 그리는 미래의 노화방지약과 인구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예감은 책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SF 단편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도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 전개방식이 충격적이라 책속에서 4번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이후로 독서를 할만한 동력이 상당히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 시대에 산아 제한을 위해 먹은 '윤리적 피임약'의 효과로 남녀불문하고 성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데, 노화방지약으로 인해 젊은 아가씨로 보이는 63세의 낸시(처녀)가 자살도우미로 등장한다. 시인 빌리는 레지스탕스로 여자들을 성적으로 각성시키고자 하는데 그 방법은 피임약의 일시적 중단 상태에서 강제로 순결을 빼았는 것이다. 시인 빌리의 아지트에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먼저 온 또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피임약으로 인해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를 각성시키기 위한 숭고한 목적이지만 빌리조차도 비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경악했다. 빌리는 마치 북미의 모르몬 교에서 갈라져 나온 일부다처 사이비 교주 같은 느낌이다. 차라리 낸시로 하여금 피임약을 상당기간 중단하게 한 뒤 주변의 남성들과의 자연스런 상호작용으로부터 남녀간의 화합을 이룰 가능성을 남겨놓았더라면 이야기가 좀더 개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기야 노화방지약, 윤리적 피임약 소재 자체가 개연성하고는 거리가 먼 SF긴 하지만). 또한 이 소설에서는 강간한 빌리가 낸시에게 결국은 당신도 이것을 좋아하게 될 거야 하는, 남성 중심의 성에 대한 왜곡된 판타지가 반영돼 있었다. 이 책이 처음 발표된 곳을 보니 <플레이보이> (1968)였다. 독자의 기호에 맞춘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상당히 비판받을 소지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 단편 소설집의 표제로 올린 것을 보니, 강간 부분을 빼면 SF 작가로서 가장 보니것적인 작품이라서 그랬으리라 추측한다. 원저 <Welcome to the Monkey House>에서부터 그렇게 해 온 표제이다.


이 단편으로 보니것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보니것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 다른 소설 <아담>에서 다산한 부인에 대해 의사가 말한 대사에서도 느껴진다; "부인은 완전히 빵이 다 구워지면 톡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 자동식 토스터 같아요. 통나무를 굴리는 것처럼 정말 쉽게 아기를 낳아요. 그냥 쑥쑥."



이 소설집은 각 작품마다 재미나 스토리 구성 면에서 편차가 큰데 그래도 내가 재밌게 읽었던 편은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와 <옆집>이었다.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는 연극 안에서 두 남녀가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상큼한 스토리였다. <옆집>에서는 반전이 신선했다.


그밖에 몇몇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반전사상,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간의 우주 개발 전쟁으로 인한 부작용(인명 사고)에 관해 그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니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 가족사적으로도 다사다난했고, 나치의 드레스덴 폭격도 겪고 굴곡도 많아서 작가로서 당대에는 반전사상을, 미래에는 디스토피아적인 시각을 투영하게 되지 않았나 한다.



표제가 된 SF 외에는 전체적으로 무난하거나 재밌거나 이색적인 소재와 내용들이 고루 들어간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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