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스웨덴 소설은 처음 읽는다.

책 표지에 A man called Ove라고 되어 있고, 소설가이기도 한 역자의 전공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주로 영어권인 것을 볼 때 스웨덴 원서가 아닌 영어판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표지 그림처럼 완고하고 완벽주의자인 노인네의 블랙코미디같고 훈훈하기도 한 얘기이다. 오베는 59세로 또래보다는 다부진 체격으로 설정돼 있어 실제 그렇게 노인네는 아니지만 하는 행동이 깐깐하고 까탈스러워 완고한 영감 이지미로 느껴지기는 한다. 어느 정도는 우리네의 고집스런 노인들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우리의 유교적이고 샌님같은 꼰대 이미지와는 달리, 오베는 자동차에 대해 풍부한 상식과 확고한 신념이 있고 동네의 맥가이버같이 기능 작업에 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작가는 아직 젊은 스웨덴 작가인데 여러 가지 풍부한 상황 비유가 재밌다. 작품 속에서 오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자기의 암울했던 인생에 마치 햇살처럼 들어왔던 아내와 함께 지내던 때가 아니었을까.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한 순애보 오베. 사회성 없는 오베에게 아내를 통해 이루어진 인간관계가 사교생활의 거의 전부였고, 사별로 인해 삶의 의욕도 없어진 오베. 매일 자살 계획을 세우지만 갑자기 생활에 끼어든 이웃들로 인해 방해 받고 내일로 끝없이 결행을 유예한다. 겉으로는 퉁명스러우면서도 츤데레처럼 사람들을 보살피고 결국엔 부탁하는대로 다 들어준다. 순전히 선량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사후세계에서 아내와 떳떳이 만나기 위해. 아마 마음속으로는 자살을 진정 원하지 않아 핑계를 대고 미룬 것은 아닐지. 완고하고 가족이 없던 오베도 점점 변하게 되고(우리는 자기를 필요로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순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아무리 외부 조건이 주어진들 본인이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59년동안 굳어진 패턴이 며칠 사이에 바뀌진 않는다) 이웃들과 화해하고 마음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혹 이것은 먼저 간 아내의 오베를 위한 어떤 안배가 아닐런지. 왠지 그의 삶에 훅 들어온 고양이도 아내의 환생같다.

이 작품에서 아쉬웠던 것은 복지국의 화이트 칼라가 강압적으로 오베의 이웃을 요양시설로 보내려고 한 설정이다. 나는 스웨덴의 복지는 어떤지 잘 알지 못하지만 저렇게 가족의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복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점유할까 싶었다. 작품 속에서는 결국 요양시설과 결탁한 그 화이트 셔츠의 개인적인 일탈 혹은 복지국의 한 부서의 비리인 것으로 해놨지만, 개연성 면에서 아쉬웠다. 아무튼 이런 비리가 가능한 것도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에 대한 응징-그것도 확실한 응징도 아니고 위협 수준-으로 끝나는 부분도 억지스러웠다. 그 응징 장면도 헐리우드 영화처럼 오베 주변사람들이 다 튀어나와 악한 존재인 화이트 셔츠에게 항거하는 것이고.

나머지 아쉬웠던 부분은 오베와 아내 소냐가 작품 속에서 소년소녀시절부터 만난 또래인데 소냐는 오베에게 존대말로 하는 반면 오베는 반말로 일관한다. 이것은 일본 소설이나 우리 소설에서 관용적으로 남녀간/부부간에 쓰이던 대화체를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어권에서는 존대말/반말이 없기 때문에 대등하게 쓰였을 것이고 실제로 친구처럼 대화하는 것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작품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과 스웨덴 소설 <창문 넘어 도망간 100세 노인>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일본의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도 읽어봐야 겠다.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스웨덴이나 원래 수명이 높았던 일본에서 나온 노인 소설들인데, 무겁게만 느껴지던 노령층의 이야기를 반전으로 코믹하게 풀어내는 것으로 기대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을 재조명하는 이런 소설들은 계속 더 늘어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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