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의 겨울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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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의 겨울>은 혼혈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인 작가의 삶이 투영된 소설이다.

작품은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며 성장한작가와 달리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속초는 어머니의 삶의 터전이자 아버지가 떠난 곳. 노르망디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전쟁이 끝난 노르망디와 달리 아직 휴전 중인 남북 대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속초 해변. 양립할 수 없는 혼혈의 혈통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분리, 마지막 냉전시대의 잔재로서의 공간.

여주는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살기에는 힘든 외모를 매번 사람들의 반응으로 자각하면서 살아간다. 전도유망한 한국인 남친도 있지만 결별을 결심하는 것으로 봐서 어영부영 섞여 살기 보다는 혼란을 겪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여정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주가 직면하고자 하는 대상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온 중년의 프랑스 만화가. 여주는 어머니에게 배운 음식 솜씨로 아버지를 떠올리는 프랑스 만화가에게 먹임으로써 연결을 갖고자 갈망하지만 그는 매번 먹기를 거부한다(음식, 특히 해산물과 복어에 대한 작가의 지식이 감탄스럽다). 그와 육체적으로 에로틱한 관계가 될듯말듯하다 결국 연결과 합일은 그가 떠나면서 남긴 흔적인 화첩에서 이루어진다. 속초를 떠나기 전 만화가는 두문불출하고 오로지 그림에 전념하는데 글쓰기를 통해 치열하게 정체성 찾기를 하는 작가의 모습이 아닐지.

극적인 사건 전개가 없이 조곤조곤한, 나지막한 어조로 담담하게 장면과 상황 묘사가 이루어지는 소설. 심심할 수는 있지만 마지막 화첩 속의 합일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여주와 만화가로 형상화된 프랑스의 부계 혈통, 한국의 모계 혈통이 하나로 만나 온전한 정체성으로서 완성되는 모습.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

작가의 최신작 <파친코 구슬>도 읽어봐야 겠다. 나는 순혈 한국인인데도 나름대로 정체성을 찾고 싶은 게 있어 의미가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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