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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스테이아 3부작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77
아이스킬로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평점 :
그리스 비극에서 유일한 3부작이라는데,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돼 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가멤논과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 딸 엘렉트라, 아폴론, 아테나, 헤르메스 <=>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 사촌이자 오촌인 아이기스토스, (죽었지만 딸 이피게네이아), 복수의 여신들로 대립돼 있다. 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인 남편 아가멤논에 대한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복수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 대한 오레스테스의 복수가 전면에 나타나 있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먼 조상 탄탈로스로부터 시작된 가문 대대로의 피의 저주(친족 살해)가 얽혀 있다. 오레스테스의 손에서 복수가 종결되고 무죄방면됨으로써 가문 대대로 내려온 저주에서도 해방된다.
이 가운데 인간세계에서 내 보기엔 모계혈통에 대한 부계혈통의 정통성이 더 부각되고 결국엔 부계혈통이 승리한다. 중재자인 아테나 여신이 캐스팅 보트로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주는데 이유는 순전히 그녀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역할을 크게 인정하지 않아서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라고 신탁을 준 아폴론이 오레스테스에게 아테네로 가서 탄원하라고 한 것도 다 이런 일을 내다본 안배로 보인다). 심지어는 여자가 자식에게 유전형질을 함께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씨앗을 자궁에 품고 양육하는 존재로서만 인정하는 발언을 한다. 고대 그리스의 가부장적인 사회상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특이한 것은 오레스테스와 클뤼타이메스트라에 대해 '오염'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나오던 표현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부정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인물에 대해 '오염'이라고 하나본데, 이 말이 소포클레스의 전유물은 아닌가 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트로이 전쟁을 재판에 비유하고, 오레스테스의 판결에 대해서도 인간의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다. 신들이 나오지만 <일리아스>처럼 인간의 전투현장에서 함께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이라는 어떤 합리적이고 도시국가적인 장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과정이다. 신들은 거기에 변론을 더하고 부추길(신탁) 뿐이고 결국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다. 그리고 오레스테스의 무죄방면 뒤 감정적으로 폭주할 뻔했던 복수의 여신들을 이성적인 아테나 여신이 잘 설득하여 그들을 도시국가에 축복을 주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변모시킨다.
작품에서 신들의 신구갈등도 함께 나타난다. 복수의 여신들은 아주 늙은 신들이고 아폴론, 아테나 등은 젊은 신들이다. 이 두 진영 사이의 가치관의 대립이 오레스테이아의 재판을 통해 부각되는데 결국 위와 같이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전체적으로는 오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가문의 저주를 끊고 새로운 후계자, 통치자로 나선 오레스테스 이야기를 통해 합리적, 이성적 가치관이 주도하는 도시국가로 나아간다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