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움의 힘을 지녔으나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자유롭기를 갈망했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였다. 그 차안의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간적 고뇌가 어려있고 미실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각자의 짐과 고뇌가 있다. 모두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 드러난 표면 속에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치가 있다. 그들이 겪는 여정과 시련은 어떤 깨달음의 여정처럼 그려져 있다. 그래서 두명 정도만 빼면 악인이 없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인간사에 대한 고뇌와 우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신비로움, 성찰의 줄기는 크게 신도(도교)와 불교의 양갈래다. 도교적인 것은 음양의 이치와 남녀의 교합, 현세적인 쾌락으로 나타나 있고 불교적인 것은 그러한 삶 가운데서도 문득문득 치고 들어오는, 이승의 애증과 부귀권세가 찰나적인 것이라는 것, 결국 무로 돌아간다는 절절한 사무침이었다. 그래서 작품의 상당부분이 남녀의 애욕을 다루었지만 그 기저에 근원적인 물음들이 있어 무게감이 가볍지가 않다.
작품에서는 미실을 여러 순정적인 남자의 사랑을 받고 정국을 휘어잡는 여성으로 그리기도 했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신라의 발전에도 나름대로 기여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 한 예로 김유신을 다음 세대 풍월주로 발탁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미실의 역할을 너무 긍정적으로 윤색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중국에 사대하지 않는 신라의 고유 문화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화랑도와 혼도(婚道)의 언급이 여러 번 나오는데 혼도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보통은 한 인간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들은 고난 속 성장과 영웅적인 성공, 회한, 삶의 깨달음 같은 것을 다루기에 웅장하고 거대한 울림이 있고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 소설은 미실이라는 당대의 여걸을 고어체의 형식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묘미가 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서사를 관통하여 유교/불교적 가치가 병립하고 융합하기도 하는 구조 속 마지막에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불교에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는 수순은 납득이 시원하게 안 될 정도로 갑작스럽고 비약이란 느낌이 들면서 기대했던 카타르시스가 일지 않아 밍밍했다.
전체적으로는 자극적인 소재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보려고 탐구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 참신한 고어체 문체가 빛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