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황영미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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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 교수인 황영미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책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황영미 작가는 57년생으로 92년도에 <모래바람>으로 등단했으며 이 책은 등단작부터 올해 11월 갓 발표된 작품까지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92~96년도까지 세 편, 그 다음엔 거의 3~5년에 한 편 정도라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은 뜸하게 한 모양이다. 각 소설마다 일제시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상이 나온다.
전체적인 느낌은 우선 쉽게 읽히는 소설들로 등장인물이 주로 전문적인 직업군이라는 거. <모래바람>은 왕성하게 활동하다 의료소송을 겪은 40대의 외과 의사, <끝없는 아리아>는 항상 다이어트를 실패하는 간호사, <전람회의 그림>의 화가, <강이 없는 들녘>의 조각가,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의 작가 등 예술가, <암해>에는 선상에서 부하들을 통솔하며 갈등을 겪는 선장이 등장한다.
몇몇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플롯이 있었다. 우선 <모래바람><전람회의 그림>은 주인공이 과거에 겪었던 어떤 일에 대한 내적 갈등을 현재 본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재경험하다 극복하고 지금의 일을 잘 마무리한다는 구조다. <전람회의 그림>과 <강이 없는 들녘>은 예술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얽혔던 이런 저런 일들로 외적 혹은 내적 갈등을 겪고 나서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갈등을 유발하는 과거와 현재의 요소로 <전람회의 그림>에서는 주인공이 그닥 내키진 않지만 친구 관계 때문에 얽히게 되는 과거 학생운동과 관련된 그림, 현재 사회운동과 관련된 회화 작품 활동이 나온다. <강이 없는 들녘>은 실향민의 과거 잃어버린 북의 땅에 대한 애착과 현재 남한에 정착한 땅과 관련한 소송이 나온다.
<모래바람>은 90년대 초 소설치곤 의료사고를 소재로 한 것이 이색적인데, 1인칭 시점의 화자가 의료사고 피해자가 아니라 의사라는 점도 특이했다. 따라서 의사의 관점이 많이 반영되었는데, 의료소송 과정 중 겪는 심적 부담감과 갈등, 소송에서 패한 보호자의 병원내 난동으로 인한 무력감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재수술하게 된 다른 환자의 용태에 신경쓰면서 근래의 소송을 떠올리며 심적 갈등을 재경험하고, 작품 말미에 환자 입장에서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짤막하게 서술돼 있어 인상적이었다.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탄생하기 전의 구보씨의 행적에 대해 상상하여 쓴 허구로, 오마쥬같다. 황영미 소설가가 박태원 전공자라고 하는데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소설로 흥미로웠다.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전반적으로 결말에서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다만 <끝없는 아리아>에서 다이어트를 끊임없이 시도는 하지만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항상 실패하는 간호사가 위암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 위수술로 다이어트에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설정은 좀 억지스러웠다.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극적으로 끝나는 소설은 <리트머스 교실>이었다. 작가의 최신작인데, 현대 고교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연상되는 이 소설은, 부모의 기대에 의해 억지로 진학한 명문고의 남학생이 주인공이다. 그는 학교에서 나오기 위해 일부러 탈선하여 원하는대로 대한학교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새로 온 수학선생의 경직된 주입식 수업 중에 질문을 던졌다가 호된 체벌을 받고 허망하게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대안학교의 이념과는 유일하게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는 수학선생이 부임하게 된 배경이 설립자의 손자라는  나오긴 하지만, 개연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 또한, 남학생이 자살 직전까지만 해도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으나 또 한 번의 체벌로 -명문고 재학중 못했던- 자살을 실행하는 설정이 급박하고 충격적이다. 결국은 지금의 제도권과 대안교육 모두에서 출구가 없는 학생들의 현실을 고발하고자 충격적인 설정을 하였겠지만, 좀더 그럴만한 스토리가 뒷받침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제목의 '리트머스'가 소설 속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실험종이인 리트머스에 시약을 묻혀 확인하고 곧 바로 버려지는 것을 감안할 때 실험적인 대안학교에서도 실패하고 버려지는 학생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학생에게 구원은 허락될 수 없었는가 하는, <수레바퀴 아레서>와 같은 먹먹함이 느껴졌다. 
전체적으로는 가독성이 높으면서 풍부한 소재로 표현한 소설들로 재미있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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