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풀니스 - 깨달음으로 가는 실용적인 마음수행 안내서
조셉 골드스타인 지음, 이성동.이은영 옮김 / 민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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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풀니스』 

책의 부제는 ‘깨달음으로 가는 실용적인 안내서’다. 처음에는 ‘깨달음’과 ‘실용성’이 함께 놓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이 책이 말하는 실용성이란 단기적 효과나 기술의 유용성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태도와 방향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조셉 골드스타인의 이 책은 마음챙김을 단순한 스트레스 완화 기술로 다루지 않는다. 존 카밧진의 MBSR이 임상적 언어로 번역된 실천 방법이라면, 골드스타인은 불교 경전, 특히 염처경을 중심으로 고통의 구조와 그 근원을 직접 바라보게 한다. 즉, 하나는 증상을 다루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뿌리를 묻는 방식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접근법의 차이가 아니라 수행의 목적 자체를 달리한다.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두카(dukkha)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고통으로 번역되지만, 골드스타인은 이를 ‘어긋남’ 혹은 ‘마찰’로 설명한다. 수레바퀴의 축이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상태처럼, 우리의 삶 역시 맞지 않는 조건 속에서 억지로 돌아갈 때 고통이 발생한다. 이 비유는 고통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신체적 감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 두카는 무상(anicca)과 연결된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고정된 것으로 붙들려 한다. 무지개가 조건의 결합일 뿐인데도 실체처럼 여기듯, 삶의 모든 경험 역시 조건적 현상이다. 이를 붙잡으려 할 때 어긋남이 생기고, 그것이 곧 고통이라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갈망(tanhā)은 시지프스 신화를 통해 설명된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 속에 갇혀 있지만, 골드스타인의 관점에서는 그 고통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은 바위를 밀어야 하는 존재’라는 동일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역할에 대한 동일시가 곧 갈망이며, 그 갈망이 고통을 만든다. 이는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어떤 태도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집착 자체가 또 다른 얽매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시를 떠올렸다. 시는 인간의 다양한 마음작용을 포착하는 언어인데, 염처경은 바로 그 마음작용을 관찰하라고 말한다. 대상은 동일하다. 다만 시인은 그것을 형상화하고, 수행자는 그것을 알아차린다. 시를 읽으며 경험하는 거리감과 메타인지는 마음챙김의 구조와 닮아 있다. 감정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시를 통해 한 걸음 떨어져 보일 때 드러난다.


시명상을 통해 도달한 ‘무아’의 감각 역시 이 책과 맞닿는다. 수많은 시에 반응하는 서로 다른 ‘나’들을 따라가다 보면, 고정된 자아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각각의 반응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며, 그것들이 모인 그 지점을 ‘나’라고 부를 뿐이다. 이는 골드스타인이 말하는 아낫따(anattā)와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경로는 다르지만 도달점은 같다.


골드스타인은 사념처 수행에 무게를 둔다.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네 층위를 통해 경험을 관찰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이해와 체험의 간극이 드러난다. 개념적으로는 따라갈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경험으로 자리 잡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몸에 대한 관찰은 신체를 ‘나’로 동일시하지 않는 데 목적이 있고, 느낌에 대한 관찰은 쾌·불쾌·중성의 감각 자체와 그에 따른 반응을 구분하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느낌이 아니라 그에 따른 욕망이나 거부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한다. 이 점은 일상의 사소한 습관 속에서도 반복된다.


마음 상태를 관찰하는 단계에서는 현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실제로는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법념처에서는 탐·진·치와 같은 번뇌의 구조 자체를 통찰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결국 이 책이 주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통찰이다. 정보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지만, 통찰은 체험을 통해서만 열린다. 그래서 이 책은 읽었다고 해서 ‘알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그것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게 만든다. 

 

이 독서는 하나의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카의 마찰이라는 비유, 시지프스의 갈망, 무아에 대한 통찰은 모두 현재 진행형의 질문으로 남는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완결된 이해를 제공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과 성찰을 요구하는 출발점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삶을 경험하는 방식 또한 점차 달라진다. 통찰은 한 번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점진적으로 깊어진다.

이 글 역시 그러한 과정의 일부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사유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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