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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대성당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평범한 일상과 툭 던져진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무심해 보이는 문장과 문장 사이, 인물들의 표정 없는 얼굴 뒤에는 인간 존재의 깊은 외로움, 소통의 어려움,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숨어 있다. 카버의 대표적인 단편으로 걸작으로 꼽히는 「대성당」(1983)은 단순히 세 인물의 역학관계뿐 아니라, 작가가 활동했던 시기(종종 1970년대 미국 사회의 그림자로 읽히는)의 불안과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시대적 정황을 그 배경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대성당」을 포함한 카버의 작품이 가진 힘은 바로 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툭 던져진 대화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진실을 파악해 내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 있다. 그는 불필요한 수식이나 장황한 설명 없이, 인물들의 건조한 대화, 사소한 행동 묘사,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침묵을 통해 인물의 내면 심리, 관계의 균열, 그리고 삶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적 접근은 독자로 하여금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감정과 의미, 즉 '행간'을 스스로 채워 넣도록 유도하며, 이를 통해 독자는 더욱 강렬한 울림을 느끼게 된다. 카버는 일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최소한의 붓질로 인간 본연의 외로움, 연결의 갈망,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의 깨달음이라는 보편적인 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이야기는 평범하다. 어느 날 아내의 친구인 맹인이 화자의 집을 방문하고 화자는 그 맹인인 로버트가 불편하다. 맹인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맹인을 가까이 본적도 사귄 적도 없ㅈ는 화자는 로버트의 방문을 불편해하고 일반인이 가졌음직한 편견으로 그를 본다. 로버트는 아내의 옛 친구이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이해한다. 아내는 그 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깊은 피로 속에 잠들어버린다.
화자인 '나'는 보이는 것, 즉 시각적인 것에만 의존하며 세상을 판단한다. 텔레비전이나 술잔, 그리고 대마초에 익숙한 그의 세계는 좁고 평면적이다. 이는 어쩌면 당시 만연했던 사회적 불안이나 현실의 무게감에서 벗어나려는 당시 일부 사람들이 선택했던 방식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아내의 과거나 맹인 친구와의 특별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맹인에 대해 그저 피상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맹인이 턱수염을 길렀다는 데 대해 놀라고 갈색의 색조로 옷을 차려입었다는 데 대해 놀란다. 그의 '봄'은 피상적이며, 타인의 깊은 내면이나 삶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내면적 맹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반면 맹인 로버트는 물리적인 시각을 상실했지만, 타인의 말소리, 감정의 파동, 그리고 세상을 이루는 질감과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며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나눌 준비가 된 인물이다. 당대의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맹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세계를 이룩해냈기에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내는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이다. 그녀는 화자의 현재이자 로버트의 과거이며,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엮어주는 존재이다. 그녀는 특유의 배려심이 넘치는 태도 덕분에 맹인을 위해 일 년간 일했고 이후 그들은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기차역에서 맹인을 데리고 온 아내는 남편과 맹인 친구 사이의 어색함을 녹이려 애쓰고, 그들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아내는 막상 중요한 장면에서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단순히 피곤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잠듦은 어쩌면 그녀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진정한 소통에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상태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지쳤거나, 혹은 현실의 관계 속에서 이미 체념한 부분이 있었기에, 기존의 편안한 관계를 넘어선 깊은 연결의 순간에서, 그녀는 잠시 부재하는 것이다.
아내가 잠든 늦은 밤, 화자와 맹인 로버트 사이에 전에 없던 깊은 교류가 시작된다. 연결 매개체인 아내가 물리적으로 부재하게 되면서, 화자는 맹인 로버트와의 직접적인 접촉, 함께 그림을 그리는 특별한 경험, 그리고 손과 손이 맞닿는 교감을 통해 비로소 '깨어난다'. 맹인은 화자에게 대성당을 그려달라고 요구하고 결국 함께 탁자 위에 손을 얹고 그림을 그리는 경험으로 이끈다. 대성당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동안, 화자는 이제까지 그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봄'을 경험한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형태가 아니라, 몸의 감각과 내면의 인식을 통해 대성당의 '실체'를 느끼는 경험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이 깨어남을 몇 문장으로 묘사한다. 화자는 대성당 그림을 완성하고 눈을 감은 채 로버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My eyes were still closed. I was in my house. I knew that. But I didn’t feel like I was inside anything." 이 문장은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고, 자신이 익숙한 공간인 '집 안에 있다'는 사실도 명확히 인지한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것 안에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But I didn’t feel like I was inside anything)"는 부분에서 이미 경계를 뛰어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자신의 좁고 편견에 찬 내면의 틀, 혹은 물리적인 경계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당대의 현실 도피적인 분위기나 그를 옭아맸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맹인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육체나 집이라는 공간, 혹은 그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이라는 '틀' 안에 갇힌 존재로 자신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니다. 그는 자신이 서 있는 물리적, 심리적 경계선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자각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눈을 감았기에 오히려 내면의 눈이 뜨였고, 익숙한 집 안에 있었지만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을 느꼈다는 이 역설적인 묘사는 화자의 총체적인 '깨어남'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아내가 잠들어 물리적 매개체가 사라진 순간에, 화자는 맹인이라는 타인과의 깊은 교류를 통해 자신 안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봄'을 넘어선 존재 방식의 변화, 즉 진정한 '깨어남'이라고 볼 수 있다.
카버는 이처럼 세 인물의 단순한 배치, 미묘한 행동(아내의 잠), 그리고 그 결과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교감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어려움과 가능성, 그리고 진정한 '봄'이란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비롯됨을 이야기한다. 세 사람의 역학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잠이 다른 두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와 깨달음으로 이끌어가는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그저 맹인의 방문으로 일어나는 극히 사소해 보이는 일상 이야기가 이처럼 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카버의 소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