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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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926년 9월 22일부터 10월 1일까지 열흘의 경성 이야기다.
류경호는 게이오 대학을 나와 육당 최남선의 눈에 띄어 그가 사장으로 있는 시대일보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한다.
그러다 작년 안팎으로 소란스러워진 시대일보를 그만두고 새벽이 폐간되고 창간된 별세계라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9월 22일 최남선의 요청으로 완공을 앞두고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며칠 전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죽은 이는 건축과 기수로 일하는 조선인 이인도이며 시체는 머리, 몸통, 팔, 다리 총 여섯 개로 토막나 대한제국의 첫 글자인 큰대자를 상징하는 위치에 뿌려져 있었다.
열흘 후에 있을 낙성식을 앞두고 조선인을 통치할 중심이 될 조선총독부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을 위에서는 쉬쉬하며 방관하고, 이를 빌미로 조선총독부부터 시작해 조선인을 주요 관직에서 몰아낼 것이 뻔했다.
머뭇거리며 사건을 받아 든 류경호는 이인도의 하숙집에 직접 들어가 사는 등 조사를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이인도와 함께 조선총독부의 단 두 명 뿐이었던 조선인 기수 박길룡이 시체가 발견된 곳에 그의 만년필이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곧 의열단과 묶어 조선인의 공작으로 치부해 사건을 종결할 것이라는 걸 안 류경호는 평범한 사람일 뿐인 박길룡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낙성식 전까지 진범을 밝히겠다 말한다.

경성의 탐정 이야기는 참 끊이질 않는다.
개화기는 분명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인데 어쩌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지, 매력이라는 단어 말고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할 만큼 아득히 유혹당한다.
이질적인 문화가 섞여 혼란하고도 어수선한 분위기와 수긍과 거부로 대변될 감정의 대립,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생경함, 무엇보다 나라를 잃은 울분과 독립에의 열망 같은 것들.
조금만 생각해도 곧장 떠오르는 그러한 배경들이 경성, 그 단 하나의 단어로 대체되는 것이다.
친일파는 아니지만 일본과 연결고리를 가져 조금은 수월한 형편의, 독립 의지는 가졌을지 몰라도 독립투사는 아닌 그들의 직업은 종종 탐정이 되고 무능한 일본 순사를 대신해 억울한 조선인의 누명을 벗기거나 일본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 아무도 몰래 나라를 지키는 데 일조한다.
주로 일본의 나쁜 짓을 막는 것으로 끝나는 탐정 소설들과는 약간 다르다.
이거라도 했어 라며 보여주기 식의 사건 해결이 아니라 딱 할 수 있는 만큼의 추리고 결론이다.
아무렴 주인공은 탐정이 아니라 기자니까.
그래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정해진 결과는 변하지 않기에 이 책을 포함해 모든 경성의 마지막은 그럼에도 희망은 있겠지 가 되고 만다.
이 책의 희망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고.

충분히 속편이 나올 것 같다.
메인인 추리 과정이 너무 튀지도 않고 허황되지도 않아서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고 수많은 고증을 증명하듯 자연스러운 그 시대의 용어들과 꼼꼼한 주석들이 이야기를 꽉 잡아준다.
그저 그런 탐정 역할일 뿐인 주인공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아주 생생한 정탐소설이다.
크게 기대 안 했는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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