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딸들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소피 카르캥 지음, 임미경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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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인상]

 ‘글쓰기’. 전혀 위화감 없는 두 단어가 만나 책 이름이 되었다. 친근하고 심지어 어딘가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것만 같은 제목 글 쓰는 딸들’. 제목만으로 강력하게 이 책에 끌린 이유는 아마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 하나 때문일 터. 바로 엄마,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글쓰기, 글쓰기와 엄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책과 멀어도 멀어도 그렇게 멀 수 없었던 시절에 유독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던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노란 표지의 글쓰기 책. 다양한 글의 형식부터 글의 구조, 원고지 쓰는 법까지 알려주던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 실용서만은 여러 번 읽었었는데, 최초의 글쓰기 숙제를 하기 전 엄마가 읽어보라고 권했던 (반강제적 명령) 책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쓰는 글이라고 해 봤자 일기, 독후감, 현장학습 보고서, 아주 때때로 논설문 정도의 가벼운 글이지만, 당시 내 일기장은 선생님들이 돌려 보는 책이었고, 제출한 여러 글은 상장이라든지, 학교 교지에 빠지지 않고 실리는 글 같은 것이 되어 돌아왔다. 어린 나로서는 , 내가 글을 보통 아니게 잘 쓰는군하고 충분히 착각에 빠질 만도 했지만, 좀 더 정직하자면 내 글 뒤엔 언제나 심혈을 기울여 첨삭을 해주던 엄마가 있었다. 표정 없이 진지하게 읽고 또 읽던 나의 엄마.

 나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글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부재와 시작되었다. 엄마의 자리가 텅 비자 비로소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써서 엄마에게 부쳤고,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도 글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 돌아오라는 절규, 세상을 향한 원망, 저주. 짧은 낙서와도 같은 글이었지만 모두가 잠든 밤 모니터 앞에서 떠날 줄 몰랐고, 훤한 대낮 작은 폴더폰 메모장을 통한 글쓰기는 학교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렇게 엄마 없이 쓰고 또 쓰며 시퍼렇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라는 사람 중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구나. 엄마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비로소 나라는 자아를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엄마와의 시간을, 엄마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를 일으켜 세워준 말 엄마 딸’. ‘엄마 딸 OO이 잘 해낼 수 있어. 엄마 딸이니까.’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를 통해 본 엄마와 딸의 관계]

 뒤라스, 보부아르, 그리고 콜레트. 프랑스의 내로라 하는 작가이자 후세대 무수한 여성들을 일깨우고 기꺼이 우리들의 언니로 자리매김한 세 여성의 글쓰기 역시 어머니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실은 그들의 글쓰기가 어머니와 뗄 수 없었다고 말하기 전에 그들의 삶이 어머니와 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일 테다. 사랑이다가도, 사랑이라 말하기엔 갑갑하고 벗어나고 싶고 심지어 밉고, 할 수 있는 만큼 온 힘을 다해 모른 척 외면하다가도 괴로운 죄책감과 사무치는 그리움에 가슴 아픈, . 엄마를 향한 딸들의 마음은 이토록 복잡한 층위로 존재한다. 숭배와 증오 사이 존재하는 모든 층위의 감정을 겪으며 딸들은 엄마라는 여자에게 보다 너그러워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된다. ‘여성이라는 이름의 연대가 시작된다. ‘여성이라는 연대의식에 동참하게 된다.

 책 읽는 내내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세 거장의 어린 시절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책 속 아이들은 거장이 아니라 어린 소녀일 뿐이다. 세 명의 소녀가 엄마로부터 받는 대우, 사랑받고 냉대받고 포옹 받고 폭력을 받아내는 소녀들의 모든 시절의 감정을 알 것만 같다. 그리고 나아가 책 속의 또 다른 여성, 나보다 더 어린 시절 혹은 비슷한 시절에 이 똑소리나고 남다른 딸의 엄마가 된 마리와 프랑수아즈와 시도. 무조건 편을 들 수도 없고, 결코 이해할 수도 없는 엄마라는 존재를, 엄마라는 여성들을 헤아려본다. 우리 딸들에게 주어진 게 사랑이 아니었다 해도,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를 선과 악으로 쉽게 양분할 수 없다. 선이든 악이든, 사랑이든 결핍이든 그 모든 것은 뒤라스에게, 보부아르에게, 콜레트에게 그러했듯 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양분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존재가 딸에게 남기는 것]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엄마는 피에르 오빠만 사랑하지. 왜 나는 사랑해주지 않아? 어째서 폴 오빠도 사랑하지 않는 거야?” (뒤라스, p107)

 

시몬은 궁금하다. 루이즈에게 물어보고 싶다. ‘엄마가 나를 사랑할까?’ (보부아르, p175)

 

그런데 엄마…… 내가 자랑스러우세요?” (콜레트, p402)

 

 세 딸은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다. 애정을 갈구했다. 만족스러운 답이 주어지든 그렇지 않든, 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이 질문이 자리할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든 알아차리지 못하든. 그리고 이 물음표가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더이상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로 하여금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수많은 딸 중 뒤라스와 보부아르와 콜레트처럼 이름을 내로라하는 거장이 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크든 작든, 유명하든 무명하든, ‘’,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 만으로 우리는 대단한 공동체 안에 속한 대단한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엄마와 딸이라는 이 공동체, 이 연대가 여기저기 많은 글쓰기로 이어지고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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