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 교회 안의 #미투,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위한 지침서
루스 에버하트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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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가부장제와 아주 이상한 위계가 결합하여 교회는 그간 성범죄의 사각지대에 잘도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미투, 용기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추악한 성범죄가 드러났고, 더불어 교회의 안일하고도 요상하기 그지없는 대응도 같이 드러났다. 책은 강력히 호소한다. ‘문밖에서 두드리는 주님께 문을 열라.’ 이것은 정의를 향해 속히 문을 열라는 강력한 두드림이다. 모두를 기만하는 가해와 무지로 인한 방관, 무책임, 엉뚱한 곳을 향해 흘려 보내는 긍휼로부터 돌이켜, 마땅히 서야하는 편에 서라! 우리는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한다. 루스처럼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다르게’ 읽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읽는 것일 것이다. 성경이 외면하는 이 땅의 문제는 어느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감상평]

 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나는 이 책의 감상평을 가히 뭐라고 적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에 묘사된 범죄자들의 기만과 뻔뻔함, 그리고 자꾸만 엉뚱한 곳을 향해 흐르는 교회의 긍휼과 무지에 분노했고 동시에 계속해서 불러오기되는 기억 속 불편했던 대화들’, ‘불편했던 상황에 아주 불편하고 찝찝한 독서를 했다

 도대체 이 불편함은 무엇인가? 독서하는 내내 나조차도 잊고 있던 소환된 기억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대화였든, 전해들은 사건이었든, 내가 몸소 겪은 일이든 온통 여성혐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말로 설명하기에는 구질구질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도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면 또다른 이상함이 뒷통수를 후려치곤 하던 시간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멀어지는 기분, 벽이 생기는 기분에 난 종종 말하기를 포기했다. 남성들과. 그리고 때때로 여성들과도.

 책을 읽으며 씁쓸한 깨달음이 있었다. 다윗. 그래 다윗! 그리스도인이라면 칭송해 마지않는, 가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쓰여진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한 가해자였고 (후에 그를 아내로 맞이하지만 다윗의 죄는 명백한 강간-절도였다), 아들의 성범죄를 눈감아 줌으로써 딸을 고립시킨 공범이자 2차 가해자였다. 암논의 죄를 덮고 다말을 (사실상) 버린 다윗의 과오는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을 뿐더러, 다윗의 범죄를 아름다운 밧세바탓으로 쉽게 읽어버리는 우리들의 교회, 우리들의 공동체에 무엇을 기대하랴?

 온화한 얼굴로 역차별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성경적 페미니즘을 가르치려던 남성들(당신은 투쟁한 적이 있는가? 당신을 주장하기 전에 눈물 혹은 항변을 헤아려 볼 수는 없었는가?), 지금 당장 여성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한시 급하고 중요한 내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보편화 돼있을 지 모른다며 안일한 대답을 내놓던 남성들(지금 당장 이야기하지 않고 읽지 않으면 변화는 누가 가져오는가? 예수님 시대의 가부장제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각 자리에 여성을 토큰으로 세우고 그것이 자신들의 대단한 호의인 양 떠벌리던 남성들 (아니 그걸 왜 당신들이 떠벌리며 공을 세우는가? 우린 아직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카톡방에 실수로’ (나체에 가까운) 여성 사진을 띄운 사람의 잘못을 공적으로 치리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남성들 (, 그때의 나는 그 불편함과 이상한 과정을 지켜보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가? 왜 내 담당이 아니라며 눈 감고 넘어갔던가?), 관심이 고파서 그렇다는 말로 포장하지만 나에겐 충분한 공포와 위협을 주었던 상황들.


고작 이렇다. 내가 겪은 일들은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아서 말하기 죄송스럽다.


 책은 궁극적으로 정의로운 회복을 지향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역동과 가깝고 먼 곳에서 있었던 성범죄들과 그로 인한 균열을 떠올릴 때, 나는 결코 회복이라는 낙관론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에는 화해되지 않는 일들이 분명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용서와 화해가 신비인 것이다. 섣부른 화해는 언제나 화를 불러 일으켰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는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사랑으로너무나 쉽게 많은 절차를 건너뛰고, 은폐하고, 심지어 잘못된 방향으로 긍휼을 흘러가도록 둔다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소리를 낼 것인가? 주님은 우리 마음을 두드리신다. 정의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기를 기다리신다.

 우리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한다. 남성이라는 교회 권력의 주류 세력이 견고히 세워 놓은 성경 읽기로부터 한 발 떨어져 나와 여성, 난민,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다행히 레이첼 헬드 에반스, 캐런 곤잘레스, 루스 에버하트처럼 여성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어가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턱없다. 누군가는 이것을 맹비난하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겠지만, 이것은 성경을 다르게읽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 다루지 못할 이 땅의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경은 크고 넓으며, 세계의 주인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미투로부터, 가부장제 탈피로부터 가장 뒤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들의 교회가 누군가의 안일한 말마따나 시간이 흐른 뒤엔 여성의 편에 서있으면 좋겠고, 이 물결의 앞에서 정의로운 회복의 모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교회가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 하겠지만 교회가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교회가 그분 곁에 있건 없건, 예수님은 #미투 운동에 동참하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평등과 정의를 위해 일어설 때 예수님의 영은 늘 운행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역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어떤 동역자는 좀 의외여서 놀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어서지 않는다면 연예계, 스포츠계, 비즈니스계, 정계가 혹 실리적인 이유에서라도 그 길을 이끌 것이다. 나는 이런 동역자들도 예수님이 환영하시리라 확신한다.


나는 교회가 그분 곁에 있건 없건, 예수님은 #미투 운동에 동참하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평등과 정의를 위해 일어설 때 예수님의 영은 늘 운행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역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어떤 동역자는 좀 의외여서 놀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어서지 않는다면 연예계, 스포츠계, 비즈니스계, 정계가 혹 실리적인 이유에서라도 그 길을 이끌 것이다. 나는 이런 동역자들도 예수님이 환영하시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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