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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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사 자료를 발굴 정리한 정민 교수의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내가 한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민 한양대 교수의 저서에 관심을 가진지는 오래되었다. 옛 한적으로 남은 고전을 현대인이의 입맛에 맞게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재주가 비상한 학자의 출현은 우리 독서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정교수가 쏟아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각 일간지의 독서란에 소개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의 첫 저서를 대한 것은 그의 역작 <한시 미학 산책>이다. 500여 페이지에 두툼한 책으로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학24번에 걸쳐 연재한 글을 모아 낸 책으로 그는 서문에서 효용가치가 다한 한시를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어 현재적 의미를 밝힌다고 했다. 아마 정교수는 시단에 등단한 시인이기도 했기에 이런 연구 작을 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글 행간엔 치열한 학문에 대한 접근과 한문학에 대한 기초가 튼튼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선조들이 남긴 한적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옛것의 숨은 지혜를 속속들이 파헤쳐 안내하는 그 속에 무궁무진 것이 들어있을 것 같다.

 그 이후 정 교수는 18세기의 걸출한 작가들의 문집을 중심으로 박지원, 이덕무 등 백탑파들의 문집과 활동을 들여다 보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긴 다산의 제자들과 교류와 강학활동을 파헤쳐 저작으로 남겼으며 강진의 선비, 황상도 그때 발굴한 인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해남의 초의선사를 천착하여 우리의 차문화의 연원을 정립하였고 초의선사의 지기(知己) 추사의 활동을 추적하고 다시 18세기로 넘어와 우리 지식인들이 청조문화와 어떤 교류활동이 이루어졌나를 추적하였다. 우리 한중 지식인의 교류활동은 먼저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추사 애호가이자 선임 연구자인 경성제국대하교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 1879~1948)의 자료를 추적하였다. 그 과정을 정리하여 책을 내 것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문학동네, 2014.5.)이다. 이 책은 700쪽이 넘는 두께와 긴 글로 20145월에 출판되어 바로 구입하였으나 꾸준히 읽지 못하고 띄엄띄엄 읽다 리듬을 잃었으나 완독은 하였다. 지난 3월에 이 저작의 공으로 정교수는 제40회 월봉 한기악 저작상을 수상하기도 한 책이다.

  저자는 20127월 하버드대학교 엔칭연구소 방문학자로 초청받아 엔칭도서관과 연구실을 오가며 한 번도 대출의 손을 타지 않은 듯한 고서와 자료를 복사와 메모로 정리해 나간다. 그것은 뜻밖의 엔칭도서관이 소장한 후스쓰카 지카시가 모은 구장(舊藏) 도서였기 때문이다. 후지쓰카 지카시는 20세기 초 중국 청대의 학술을 연구하다가, 조선의 지식인에 푹 빠졌었다. 그가 조선에서 필생의 의욕을 쏟아 수집했던 자료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보 세한도(歲寒圖)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곡절 끝에 다시 미국대학의 도서관으로 흘러들어온 지 60여년 세월 만에 이제 제 임자를 만난 것이다. 그 자료는 후지쓰카의 손을 거쳐 일부 소개되어 세상에 알려진것도 있지만 미쳐 손을 대지 못했거나 모으기만 하고 미쳐 음미되지 않은 자료가 훨씬 더 많았다. 이제 그 자료를 통해 정민 교수의 노력으로 세상에 발표된 것이다. 그는 18세기뿐 아니라 19세기 한,,일 지식인들의 교류와 소통의 연구로 확대해 가고 싶어 한다. 이제 그 주요 내용으로 가보자.

  제1화는 후지쓰카 지카시 컬렉션과의 만남이다. 과천시는 추사가 말년을 지낸 곳이다. 뜻있는 과천의 문화인들은 추사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데 힘을 기울였다. 추사에 관한 연구와 자료수집을 알고 있는 관계자는 후지쓰카 지카시의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直, 1912~2006)를 일본으로 찾아간다. 자료를 잘 보관하겠다는 과천시 관계자들의 믿고 1945년 도쿄폭격으로 방공호에서 살아남은 자료들과 묵적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 이후 과천시는 추사박물관을 설립하여 기증자의 높은 뜻을 기려 정기 전시회를 통해 자료를 수차례 공개한 것으로 안다. 이 전시회를 다녀온 정교수는 후지쓰카의 수집한 자료와 묵적이 화물칸 몇 량을 가득 채우고 남을 많은 양이 있음을 간파한다. 엔칭 도서관에 들어간 정교수는 원고지에 펜으로 작성한 원고를 보며 망한려용전(望漢廬用箋)이란 후지쓰카 지카시의 전용 원고지임을 알게 된다. 망한려(望漢廬)북한산이 바라뵈는 집이란 뜻으로 후지쓰카의 서재이름인 것이다. 도서관에 오기 전 엔친도서관에 후지쓰카의 자료가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겠다 쾌재를 불렀다. 1화는 <철교전집>의 필사본이다. 철교란 엄성의 호로 엄성(嚴誠,1732~1767)은 홍대용이 북경에서 사귀어 필담을 나눈 절강성에서 과거 시험을 보러와 만나게 된 한중지식인 교류에 물꼬를 튼 분이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독특한 개성이 있는 이물이다

2화는 철교전집과 함께 열람한 책이 이다. 2화는 절강향시주권에 얽힌 사연이다. 중국 절강지역에서 실시한 향시 답안지다. 홍대용과 교유를 나눈 육비(陸飛, 1719~?) 엄성, 반정균(潘庭筠, 1742~?) 이 세 사람의 1765년 치러진 답안지로 육비가 1, 반정균이 21, 엄성이 60등으로 모두 회시에는 합격하지 못하고 그때 홍대용 팀의 정사를 맡은 순의군이 기념으로 가져온 것이 자료에서 발견된 것이다.

  홍대용은 건정동 필담에서 북경의 유명한 서점 거리 유리창에서 절강성에서 회시를 치러 북경에 온 엄성, 반정균, 육비와 사귀게 된 내용을 소개한다. 엄성도 日下題襟集에서 같은 만남에 대해 따로 기록한다. 1766126일 우리 측은 비장 이기성이 안경을 사러 유리창에 나갔다 우연히 마주치어 인연을 갖게되고 함께간 홍대용은 그 사연을 듣고 23일 건전동으로 엄성과 반정균이 머부르는 객점을 찾아가 필담을 나누며 교제가 시작된다. 그 후 엄성은 낙방하여 낙향했고 2년후 풍토병을 사망하나 10년 후 뒤 늦게 도착한 부고를 보고 애도하고 초상화를 요청하여 받았다. 엔칭도서관에서 우연히 묵림금화(墨林今話)란 고서를 펴보고 홍대용이 사귀었던 엄성과 육비에 대한 후일담이 기록 되어 소개하였다. 이 책은 이 외에 엔칭도서관에서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홍대용과 만나 우정을 나눈 청의 학자와 사귐 유금과 이조원의 만남, 완당의 인보에 관한 이야기, 한객건연집이 중국에서 인기있었던 일,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강세황 등 18세기 청의 학자들과 교류한 주인공들의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 하며 말한다. ‘후지쓰카 지카시! 끝으로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러야겠다. 나는 지난 1년간 일거수 일투족을 그와 함께 했다. 그의 흔적을 찾아 헤매면서 늘 부끄러웠고 자주 주눅이 들었다. 그는 내게 머리로 하는 공부, 가슴으로 하는 공부 말고 몸으로 하는 공부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했다. 사실 그는 찾아놓기만 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8세기 문예공화국이 우정과 친교의 장이었다면, 19세기는 학술과 문화의 장으로 펼쳐졌다. 동아시아 학술은 이 같은 접촉을 통해 상호 존중의 정신이 작동되고 있었다. 가능성을 꿈꾸며 새로운 지적 커뮤느티,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문예공화국의 장대한 꿈을 되살려 보고 싶다.’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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