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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리브의 삶의 한 장면장면들이 짧은 글로 엮어 모인 이 책의 깊이를, 한 단편 <엄마 없는 아이>만으로 다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엄마 없는 아이>를 이루는 섬세한 단어들의 모음의 끝에 다다랐을 때, 한 줄기 소름이 내 뒷목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확실히 분명하다.
소설 속에서 ‘엄마 없는 아이’는 두 가지로 작용한다. 앤의 어머니가 앤이 막내 내털리를 낳기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올리브는 앤과의 대화를 통해서 듣게 된다. 앤은 오래도록 힘든 삶을 견디며 살아온 어머니를 추억하며 ‘집을 멀리 떠나온’ ‘엄마 없는 아이’로 스스로를 떠올린다. 올리브는 앤의 사랑하던 누군가를 쉽게 떠나보내기 힘들어하는 모습에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글의 마지막에서 올리브는 ‘엄마 없는 아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아들 내외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올리브와 크리스토퍼와의 대화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작은 위화감의 정체란. 올리브의 배우자가 될 잭과의 만남에서 애써 둘의 결합을 인정하지 못하는 크리스토퍼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앤의 모습, 그리고 앤의 모습에서 예전 자신이 전 남편 헨리에게 보인 모습들이 겹쳐지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흔히 매우 헌신적이고 일방적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래서 크리스토퍼가 올리브에게 보이는 태도는 얼핏 보면 다 커서 자기 사업과 가족을 둔 아들이 더 이상 어머니를 인생의 작은 부분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옹졸한 태도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을 단편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리라. 아버지에 대한 감정, 어머니에 대한 감정, 어릴 적부터 본 부모의 모습들에 영향을 받은 아들 크리스토퍼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말과 행동의 표면에서 차이를 부여하려 하지만 세대가 내려와도 그 인생의 모습에서는 달라진 점이 없다는 이야기로 돌아온다. 심지어 그것은 부정적이다.
어머니와 자식 간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앤과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극적으로 차이가 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앤도, 살아계신 어머니를 꺼리는 크리스토퍼도 같은 ‘엄마 없는 아이’지만,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냐는 하나의 의문이 글의 마침표를 찍으며 들게 된다.
뒷 목의 털들이 올올이 솟아오르면서도, ‘가족애’에 대한 여러 상념을 남기게 하는 훌륭한 한 편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올리브 키터리지’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여러 메시지들에 대한 궁금증들이 커졌다. 시간과 공간이 상이한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느끼는 것들과 결코 다르지 않을 이야기. ‘다시, 올리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