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스매틱스 3 - 알콰리즈미, 피보나치 편 ㅣ 매스매틱스 3
이상엽 지음 / 길벗 / 2022년 4월
평점 :
대표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운 좋게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글을 쓴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던 중 우연히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 광고를 마주치게 됐는데, 수학을 주제로 한 타임슬립 소설이라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등학생이 과거로 돌아가 깽판을 치는 소설은 유례가 깊은 장르였는데(심지어 마크 트웨인도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라는 타임슬립 소설을 쓰지 않았던가), 이번엔 수학을 소개하기 위해서 타임슬립의 형식을 취한 소설이 나오다니,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일단 이 책은 확실히 소설이다. 수학 이야기만큼이나 내용 전개의 비중도 높다. 물론 스토리의 짜임새가 엄청나다던가 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소설의 탈을 쓰고 수학만 온통 나오는 책은 절대 아니다. 정말 '소설'에 해당한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힌다. 이상엽 선생님이 정말 소설책을 만드셨구나. 책을 읽는 느낌이나 난이도는 산뜻한 문체의 웹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이 상당히 어둡기는 하지만, 최소한 문체는 쉽고 가볍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 읽히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연이어서 타임슬립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가 휙휙 넘어간다.
그러나 가벼운 문체를 채택했기에 생기는 단점도 있다. 가끔 주인공의 감정 묘사가 유치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ㅠㅠ 사실,원하지 않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기억을 잃어버리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특정한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 만 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감정의 서술이 가볍다보니 감정선 묘사가 유치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분량을 짧게 유지하다 보니 생긴 문제인 듯 하다. 그래서 성인이 이 책을 읽을 경우 중간중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다만 학생 연령대의 독자들에게는 이런 가벼운 감정 묘사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 있으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 말이다.
(단, 1권은 다르다. 1권은 분위기 자체가 미스터리하면서 묘하게 비극적인 느낌이라, 유치하다는 느낌은 딱히 들지 않았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그 에피소드에 등장한 과거의 인물들과 과거의 시대, 관련된 수학 개념들을 소개해준 점도 참 좋았다.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형태로 살아 숨쉬는걸 보고 나니, 역사적인 설명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수학 설명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부분에선 과거 시대에서 옛날 스타일로 수학적 의문들을 풀어나갔는데, 에피소드가 끝난 뒤에는 관련된 개념들이 현대의 수학 체계로 총정리된 채로 소개되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오늘날의 수학 체계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천천히 쌓아올려진 것이라는 사실이 확 느껴졌다. 이와 함께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도 다르게 보이더라. 학생 시절 툴툴대면서 공부한 것들이, 사실은 몇천 년에 걸쳐 고민과 고민이 이어진 끝에 완성된 것이었구나,라는 감정이 확실히 올라왔다.
나는 3권을 가볍고 재미있게 읽어서, 1권도 따로 사서 읽었다. 읽어보니 1권은 기가 막히게 재밌더라. 개인적으론 3권보다 더 재미있었다. 가볍고 경쾌한 문체는 그대로면서, 이야기 흐름이 놀랍도록 흥미진진했다. 수학 관련 개념들도 역시 물 흐르듯이 소개됐다.
특히 1권이 시작되자마자 '극한(실수의 조밀성)'과 관련된 신기한 개념들을 기가 막히도록 자연스럽게 소개해서 놀랐다. 첫사랑에 빠져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극한 개념까지 덩달아 이야기되는 방식으로 설명되었는데,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정말 자연스럽게 설명이 시작되고 끝났다. 사실 이게 깊게 가면 대학수학의 엡실론-델타 논법까지 나오는 굉장히 추상적인 문제인데. 첫사랑 이야기 읽다보니 어느새 설명이 다 끝나있었다. 이후에도 무리수 개념이나, 엄밀함과 공리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나온다.
이처럼 소설을 전개하며 수학 개념들을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하게 끼워넣는 능력은 이 책이 독보적일 듯 하다. 말 그대로 '회귀물 소설'이니까. 그리고 수학도 잘 잡은 회귀물 소설이니까. 이 책은 소설의 탈을 쓴 수학투성이 책도 아니고, 말만 수학인 그냥 소설책도 아니다. 정말로 '소설'이면서 '수학'도 잘 들어있는 책이다. 물론 성인이 보기에 감정 묘사가 조금 오글거릴 수는 있지만 말이다.
가장 추천하는 대상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학생들까지다. 문체가 워낙 읽기 쉽고, 수학적 개념 설명들도 정말 쉽게 되어 있다.
수학, 과학, 코딩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미 중학생을 넘은 나이라면 시험삼아라도 당장 사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수학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학생에게도 괜찮은 책이다. 중학교 2학년쯤만 되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수학을 접해볼 겸, 가벼운 환생물 웹소설 읽는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쓱쓱 읽힐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도 권장할 만하다. 일단 주인공들 나이가 고등학생이기도 하고. 또 이 책에서 다루는 개념들에 심오한 것들이 꽤 많다. 설명이 쉬워서 그렇지,사실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수학 내용들이 상당히 많다. 위에서 말했던 '첫사랑 극한 이야기'도, 사실 깊게 파면 대학교 해석학 영역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고등학교 수학의 기본을 다양한 관점에서 탄탄하게 다질 기회가 계속 나온다.
마지막으로, 성인의 경우에는, 평소에 수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던 사람에게 권한다. 특히 나처럼 수학을 궁금해하기는 하나 천상 문과생이라 실력은 아마추어인 사람들에게 딱 좋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진짜 많다. 흥미진진하고 궁금해 죽겠는 이야기들이 엄청 나온다.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의 본질을 한번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던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반대로, 성인들 중에서 수학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소설책인 것은 확실하나, 수학의 존재감도 확실하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