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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 Perfect Game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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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시대의 분위기를 통렬하게 표현하며 보편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개성이 있는 방식으로 시대와 야구를 말한다. 80년대의 야구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다는 과열된 지역감정 대립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정말 특별했다. 하지만 만일 야구를 통해 시대를 말하는 시도에만 그쳤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스포츠 영화의 문법에만 충실했다면 야구 소재의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퍼펙트 게임>은 스포츠 장르의 영화가 보여주는 구조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스포츠 영화에 머무르지 않은, 정말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영화의 중심축은 선동열과 최동원의 라이벌전이다. 그것을 표현해내기 위해 두 사람의 캐릭터 차이는 아주 극명하게 표현된다. 실제로 선동열은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경기가 다 끝나지 않는 중간에도 던지고 나면 나와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빨리 끝내고 술 마시고 싶어서 엄청 잘 던지고 나와 버리는 때도 있었다고 하니 그가 '독기'만 있으면 최고가 될 거라고 말한 극중 김응룡 감독의 대사도 괜히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최동원은 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는데 술, 담배를 계속 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른 선수들과 사이 좋지 않았던 것도 있을 법하다. 남자들이야 술 마시면서 풀고 푼 거 다시 쌓고 다시 또 해장술 하면서 풀고 하니까. 바로 이거다. 최동원은 더, 더 고독한 남자였다. 아니, 최동원은 그 누구보다도 고독한 야구선수인 남자였다.
이 작품이 시대를 그려내는 방식도, 그리고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를 요리하는 방식도 다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최동원이라는 사람을 표현해내는 방식이었다. 최동원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은사를, 동료를, 후배를 챙기는 인간적인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러나 야구장에 유니폼을 입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세상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 고독한 싸움에 깊게 몰입한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외롭고 처절한 싸움이다. 영화는 그가 악몽을 꾼 후 눈을 떴을 때의 고독감, 혼자 불빛이 반짝이는 잠든 도시를 볼 때의 쓸쓸함, 마운드에 섰을 때의 외로운 어깨를 보여준다. 그가 어깨의 아픔에 신음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외경심마저 느끼게 한다.
영화의 길고 긴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괴물같은 15회의 경기는 지금까지 내가 본 야구 영화 중 최고 긴 것 같은데 전혀 시간 감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경기가 가장 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스포츠 영화의 제1의 차원에서 나아가 놀라운 인간의 정신력이 흩어질 뻔한 팀을 단결시키는 데에 성공한다는 스포츠 영화의 제2의 법칙을 손쉽게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경기가 자발적 화합을 이끌어낸다는 스포츠 영화의 제3의 원칙을 보여주면서 그 정점을 찍는다. 이러니 내가 반하지 않고 배기냐고 ㅠㅠ
조승우의 뮤지컬을 본 적도 없고 그나마 그의 필모에서 <말아톤>은 참 좋게 봤지만 그건 대본이 좋은 탓이지 조승우 연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이 배우에게 객관적 거리를 두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최동원을 연기한 조승우는 지금까지의 모든 그의 작품 중 최고였다. 모르겠다. 그건 조승우라는 배우가 최동원을 연기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최동원이라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어서 그런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이 작품에서의 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양동근이 부족했냐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조승우가 심하게 잘했을 뿐이다. 영화를 본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경기가 다 끝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전광판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를 않으니 말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