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강도 높은 수험생 생활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연인 관계를 누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서로를 지켜보고, 살뜰하게 챙기고 보살폈다.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인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특별한 관심을 주고, 설렘을 느끼게 해 준다면, 다른 아이들과 구별해 줄 모종의 사연, 로맨스를 선사해 주기만 한다면, 또한 당시 우리의 조건에서는 남자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애인이 이 모든 요구를 더 잘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한지, 다가오는 생일에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도 굳이 내색하고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그로 인한 이득이 욕심나도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신자가 될 수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