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높은 하늘, 너른 들판, 고요한 샘물 사이, 알 수 없는 슬픔을 담은 목소리가 숲속 깊은 곳의 수많은 반딧불과 함께 밤바람 가운데 떨어졌다.
‘때로는, 누군가의 대역으로 오래 지내다 보면 원래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잊게 되거든요.’
‘도독, 제 이름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제 이름은……’
청년의 아름답고 맑은 눈이 조금씩 어두운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손에 단단히 쥔 향낭을 바라보며 가볍게 두 글자를 뱉었다.
"화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