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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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정말 쇼킹했다. 우선 5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며칠 만에 모두 읽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내용에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당시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위대하다고 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개미>의 거의 끝부분의 반전은 정말이지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후로 베르베르의 팬이 되었고 <개미>이후에 나오는 작품들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딸이 자란 후 대학생이 되었을 때 <개미>를 추천했고 딸도 베르베르의 팬이 되었다.

 

<개미>후에 재미있게 본 작품으로는 <뇌>, 단편집<나무>, <고양이>, <기억>등이 있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개미>이후 작품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파피용>과 같은 작품은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다만 파피용의 결말은 매우 신선해서 역시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나름 좋아했던 장르를 꼽는다면 어려서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했고 그 후 추리소설에 빠졌었고 사는 게 힘들었을 때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라는 자전적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들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나서는 그의 무한한 상상력에 도취되어 베르베르의 작품만 찾아 읽었었다. 이후 다시 사는 게 바빠져서 책 읽기에 뜸해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베르베르가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하고 무조건 읽어봐야겠단 생각에 가슴이 벅찰 정도였다. 읽고 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역시 베르베르라고 엄지 척 치켜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프랑스 작가지만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받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이번 자전적 에세이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속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 기쁘기도 하고 베르베르작가에 대한 친밀감이 더 느껴지는 듯하다.

 

p439~443

보통 2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2016년 <제3인류> 연작 완간 기념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한 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는데 교장이 다가와 간곡한 청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를 따라 교장실로 가니 한 소녀가 그의 팔걸이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교장은 죽고 싶다며 자신을 찾아온 학생을 말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서, 내게 설득을 부탁했다.(중략)

학생을 설득할 말을 찾아야 했다.(중략)

깊게 고민해 대답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중략)

어떻게 해야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중략)

"네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보렴. 멋진 할머니로 늙어 있는 네 모습을 그려 봐. 그 할머니는 지금 이 장면을 어떻게 회상할까. 시험 하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포기하려는 소녀가 그 할머니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철없는 아이로 비치지 않을까?"

소녀가 킥 웃었다. 나를 위해 예의상 웃어 줬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방 안에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졌다.(중략)

학업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한국 학생들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소녀를 통해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그날 새삼스럽게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 묘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내 잘못된 단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부를까 봐 솔직히 무척 두렵고 떨렸었다.

 

위의 이야기에서 베르베르의 인간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명세를 떨치는 작가의 모습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나 진심을 다하려는 모습이 느껴져 더욱 친근감이 느껴지게 되었다.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시작부터 스릴러 장르로 시작하여 몰입감을 준다. 이야기꾼 작가답게 실제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스릴러소설을 읽는듯한 이야기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해준다. 이야기는 그가 나이 먹어가는 순서로 진행된다. 나에게 쇼킹을 안겨준 <개미>의 탄생은 열네 번의 버전을 거친 대작이었다. 그는 새로운 버전을 쓸 때마다 전의 버전은 다시 읽지 않고 새로운 버전을 쓴다고 한다.

 

p102~103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열일곱 살에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고등학교 과학 계열 진학에 실패한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준 소설들을 쓴) 작가 프레데리크 다르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수인데, 그 자신은 매일 아침 네 시간씩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중략)

규칙을 실행에 옮기자 <향기와 음악이 있는 만화>의 시나리오로 썼던 단편 <개미 제국>이 콩나물 크듯 자라 몇 달 만에 1백 장가량의 중편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5백 장, 1천 장짜리 대작이 되었다.

(중략)

재미 삼아 이합체 시 형식을 빌려 이야기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눈 밝은 독자가 찾아낼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집필 중간중간 친구들에게 시험 삼아 읽혔을 때 첫 서른 장을 넘기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1천2백 장에 이르는 소설의 첫 번째 버전을 마침내 완성했다. 그러고는 첫 번째 버전을 다시 읽지 않고 두 번째 버전을 쓰기 시작했다. 1천2백 장짜리 버전 B를 완성해 다시 친한 친구들에게 읽혔다.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베르베르 작가를 좋아하는 팬들은 물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베르베르의 베스트셀러 작품들은 그의 천부적 능력보다 베르베르의 노력과 일상에 대한 관찰 덕분에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개미>라는 대작을 쓰기 위해 개미테라리엄을 관찰하며 10여 년이 넘는 기간을 열네 번이나 고쳐 쓰면서 완성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아홉 살에 강직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아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넘겨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베르베르에게는 경험이었고 그 경험이 모두 그의 작품들로 승화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은 모두가 하나의 독립 체인 듯하면서 묘하게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베르베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관이 일정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베르베르의 작품이 좋은 지도 모르겠다. 무한한 상상력 속에 결국은 인류에 대한 긍정적인 그의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

 

p365~366

어쨌든 오늘날 우리는 조상들보다 나은 삶을 산다.

(중략)

<옛날이 더 좋았지>라고 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지 모르지만 현세대는 조상들보다 교육 기회도, 유용한 기술의 혜택도 더 많이 누리면서 살고 있다.

(중략)

그러니 <미래가 더 좋겠지>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번 꿈꿔 보자.(중략)

완벽한 조화가 구현된 미래 세계.

나는 글로 묘사함으로써 그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미래가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구습을 버릴 것을 종용하는 고통스러운 위기들이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해피 엔딩>은 우리에게 도래할 수 있는 미래라고 나는 믿는다. 그건 실현 가능한 미래다.

 

2년에 한 번은 한국을 찾는다는 베르베르가 이번 달에 한국을 찾는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비록 사인회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베르베르 작가가 한국을 찾아왔다는 소식만으로도 무척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보려 한다. 그의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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